내란 사건을 수사 중인 조은석 특별검사는 법무연수원장이던 2019년 『수사 감각』이라는 책을 썼다. ‘범죄가 검사를 지나치게 하지 말라’는 부제가 달린 일종의 수사지침서다. 검찰 수사 기법을 고대 중국의 병법인 ‘삼십육계비본병법(三十六計祕本兵法)’에 비유한 이 책 9절 ‘움직이게 하라, 움직이면 기회가 온다’에는 삼십육계 중 13계인 ‘타초경사(打草驚蛇)’가 나온다. ‘풀을 두드려 뱀이 놀라 움직이게 하여 뱀을 잡는다.’ 밀행성이 원칙인 수사에서 공개 압박으로 공략하는 역발상 전략을 의미한다. 지난달 28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내란특검팀 조사를 받으려 서울고검에 출석하는 장면을 보면서 이 대목이 떠올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윤 전 대통령의 첫 자진 출석이다.
요란한 영장에 윤석열 자진 출석
2차 조사 불응하자 측근 줄소환
언제까지 수싸움 계속할 셈인가
조 특검은 책에서 1999년 서울지검 특수2부 검사 시절 D공사 수사 사례를 소개했다. 본부장과 단장 등 임원 다섯 명을 구속했으나 사장이 잠적했다. 차명폰까지 추적해도 피의자는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다. 그때 꺼낸 수사 기법이 타초경사였다. 사장의 연고지를 찾아가 공개적으로 탐문하고 다녔다. 그가 지나간 동선마다 수사진을 보내 뒤지면서 여기저기 촉수를 뻗는다는 사실이 피의자 귀에 들어가게 했다. 결국 사장은 은신처에서 나왔고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수사진 앞에 나타났다.
경찰에서 윤 전 대통령 관련 사건을 넘겨받은 특검팀이 곧바로 체포영장을 청구한 선택은 의외였다. 체포영장 청구 사실을 적극적으로 언론에 공개했다. 윤 전 대통령이 경찰 소환에 세 번 불응했다지만, 별도의 수사조직인 특검이 경찰 소환 불응을 이유로 영장을 청구한 건 낯설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기본적인 절차가 모두 생략된 채 특검이 체포영장을 청구했다”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특검이 출석을 요구하면 나가겠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의 첫 자발적 수사기관 출석이 이뤄졌다. 내란특검팀이 준비 기간에 기습적으로 수사를 개시하며 실행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추가 기소도 뜻밖이었다. 특검 수사는 대개 압수수색으로 포문을 연다. 어제(3일)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을 수사하는 민중기 특별검사팀이 삼부토건을 전격 압수수색한 방식이 특검 수사의 정석에 가깝다. 특검팀이 기존 수사 내용을 검토하고 관련자를 소환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압수수색은 자료를 수집하는 절차이면서도 이목을 집중시키니 특검팀 출범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다.
그런데 내란수사팀은 김 전 장관 추가기소로 시동을 걸었다. 새로운 범죄 혐의를 기소하려면 기존 재판에서 다루는 내용과 별도의 의혹을 찾아내 공소장을 작성해야 한다. 추가 구속까지 끌어내려면 법원을 납득시킬 수준의 완성도가 필요하다. 그런데 수사 인력도 완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김 전 장관을 기습했다. 재차 구속된 김 전 장관은 법원이 조건을 달아 보석을 허용할 때 거부했던 선택을 후회할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일 내란특검의 2차 소환에 불응했다. 다시 체포영장의 압박을 받으며 내일 오전 출석을 요구받은 상태다. 조 특검은 마치 풀밭 여기저기를 두드리듯 그제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를, 어제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과 김성훈 전 경호처 차장을 줄줄이 소환했다. 계엄선포문 작성과 안가 회동, 영장 집행 방해 등 관련 의혹도 제각각이다. 윤 전 대통령의 소환 불응이 오히려 특검의 준비 시간을 벌어준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30일 기자회견을 하며 수사·기소 분리 같은 검찰개혁 구상을 얘기하는 동안 윤 전 대통령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을 받고 있었으니 마음이 더 산란했을 터였다.
조 특검에게는 병법 삼십육계 가운데 아직 35계가 남아 있다. 내일은 어떤 공격이 들어올지 노심초사하면서 특검이 부를 때마다 출석 시간을 한 시간만 늦춰달라고 요청하기보다는 윤 전 대통령이 한 시간 일찍 일어나 수사기관에서 성심껏 소명하는 방안이 가장 나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