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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혁신체계를 갖춘 ‘실용’ 정부 되길

중앙일보

2025.07.03 08:30 2025.07.03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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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제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한때 그리도 기세 좋았던 한국경제가 맥을 잃고 주저앉고 있다. 성장률이 세계 평균성장률을 밑돈 지는 오래되었고, 금년 성장률은 OECD 국가 중에서도 최하위권 수준으로 전망되고 있다. 경제 규모는 한때 세계 10위에서 지난해에는 14위로 하락했다. 이대로 가면 더 내려앉게 될 것이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한 1962년 이후 지난 약 60여 년을 돌아보면 전반 30년의 연평균 성장률은 8%를 넘었고, 후반 30년의 성장률은 그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30년간 평균성장률을 8% 이상 지속한 예는 당시까지 세계 경제사에 없었다. 그 이후 30년간 성장률이 절반으로 뚝 떨어진 것도 드문 예이다. 이제 다음 30년간의 성장률은 지난 30년의 4분의 1에도 못 미칠 전망이다. 한국의 경제성장 궤적을 서구 선진국들이 그려온 궤적과 비교해 보면 압축성장과 압축하락이라는 특징을 보인다. 이는 그만큼 우리의 경제정책 대응도 압축적 구조조정이어야 함을 시사한다. 그러나 반대였다. 구조적 왜곡은 빠르게 쌓였고, 개혁은 지지부진했다.

한국 경제가 이어온 성장과 추락
압축적 구조조정 요구하는 상황
실용이 임기응변 그치지 않도록
경제혁신의 틀과 방향 제시돼야

경제성장 전반기 약 30년, 한국 경제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그건 ‘역동성’이었다. 구한말까지 지속되었던 신분계급 질서와 계층 간 격차가 일제, 토지개혁, 한국전쟁을 거치며 거의 완전히 붕괴하여, 1960년대 한국인들은 모두 거의 같은 출발선에 서게 되었다. 과거 소수 양반에게만 열려있었던 출세와 축재의 기회가 100% 국민에게 열리게 되면서 ‘코리안 드림’은 피부색과 종교에 의한 차별은 없애지 못한 ‘아메리칸 드림’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었고, 우리 국민은 자신과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것을 마다치 않았다. 이런 국민적 에너지가 국가 리더십의 비전과 추진력, 국제환경에 적절한 정책 방향, 제도정비, 행정관료 조직의 열성과 어우러지면서 폭발되어 나왔던 것이 기적 같은 성장이었다.

그러나 이런 역동성은 한 세대로 그치고 말았다. 1980년대 들어서면서 우리 사회에는 기득권층이 다시 형성되며 역동성은 점점 퇴조하고, 계층 간 사다리는 좁혀졌다. 세대 간, 지역 간, 계층 간 격차와 갈등이 심해지면서 민주화는 개혁과 혁신과제들을 제대로 해결해내지 못했고, 적체된 구조적 취약성은 외환위기를 맞아 겨우 외부 압력에 의해 일부 정리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 지금까지 별다른 개혁 없이 구조적 왜곡은 쌓여왔다. 손쉬운 재정·통화 팽창 정책에 기대어 경제침체를 벗어나려다 보니, 민간부채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게 되었으며 정부부채도 이대로 가면 고령화로 인한 연금·의료보험 지출의 자동적 증가만으로도 선진국 평균 수준을 넘어 지속성을 위협받게 되었다.

우리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는 재정·통화 완화 정책에 대한 습관적 의존을 피하고, 산업 구조조정, 노동시장 유연화, 임금체계 개편, 신기술 투자, 중소벤처기업 정책의 재구성 등 밀린 과제들을 제대로 정리해 나가야 한다. 중국의 추격에 우리 산업기반이 함몰되는 위기에 놓여있는 지금,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무엇보다 침체된 역동성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계층 간 사다리를 넓히고 젊은이들이 같은 출발선에서 경쟁할 수 있게 경기장을 정리해야 한다. 사교육 의존도를 줄일 수 있도록 교사들의 훈련과 인센티브를 강화해 공교육을 개선하고, 대학의 연구비와 장학금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재벌 지배구조의 점진적 개편을 통해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고, 중견기업, 벤처기업들이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공간을 넓혀주어야 한다. 담합, 유착, 기술탈취, 내부거래에 의한 부의 이전에 대해서는 엄정한 공정경쟁질서를 세워야 한다. 중소기업에 대한 맹목적 지원정책도 개편해야 한다. 한계 중소기업들이 정부지원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재적 가치와 미래 성장성에 의해 시장에서 평가되어야 이들의 구조조정도 원활히 일어날 수 있고, 혁신기업들의 성장 공간이 제대로 마련된다.

새 정부가 ‘실용’을 중시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과거 이념적·공론적 정책들이 표방하는 목적과 달리 결과적으로는 공교육을 무너뜨리고, 노동의 이중 구조를 심화시키며, 기득권의 공고화를 돕는 것을 보아왔다. 그러나 실용 기조가 임기응변식 대응으로만 그치지 않게 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지금 전반적 시스템 혁신 없이 한국 경제의 장기적 침체를 막을 길은 보이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는 체계적 구조조정, 혁신의 틀을 짜고 이 틀 안에서 실용적 접근을 해 나갈 필요가 있다. 결국은 사람과 자본과 제도와 기술이다. 우리 사회의 인재와 자원의 흐름을 왜곡하고 있는 낡은 보상·유인 체계 및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인재와 기술력이 미래 먹거리를 키운다. 이재명 정부는 과거에 드물었던 의회 절대다수라는 정치적 세를 확보하고 있다. 이 드문 기회를 경제혁신을 위해 잘 활용해나가길 기대한다.

조윤제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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