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감세법' 후폭풍 경고…"10년간 정부부채 4천640조원↑"
미 의회예산국 추정…단기 디폴트는 막았지만 장기 우려 키워
IMF "IMF 권고와 반대"
(서울=연합뉴스) 황정우 기자 = 3일(현지시간) 미국 연방 의회 문턱을 최종적으로 넘어선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은 미국 연방 정부의 단기적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은 막았지만, 미래 재정적 위험은 더욱 악화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2기 핵심 국정과제들을 실현하기 위한 내용을 담은 법안은 4일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만 남겨 놓게 됐다.
법안은 연방 정부의 부채 한도를 5조달러(약 6천775조원) 늘린다.
이르면 내달 말께 한도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연방 정부의 부채 한도(36조1천억달러·약 4경9천300조원)를 5조달러(약 6천830조원) 높였다.
이에 따라 단기적으로 연방 정부의 디폴트 가능성은 사라졌다.
미국 의회는 연방 정부의 재정 건전성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정부가 빌릴 수 있는 금액에 상한을 두는 '부채 한도'를 설정해두고 있다. 한도를 채우면 돈을 더 빌리는 방식으로 기존 채무를 갚을 수 없기 때문에 연방 정부가 디폴트 상태에 처하게 된다.
법안은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 때인 2017년 시행해 올해 말 종료될 예정인 개인 소득세율 인하,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등 각종 감세 조처를 영구화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면서 '감세 법안'으로도 불린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팁과 초과근무 수당에 대한 면세 내용도 들어갔다.
이에 따라 장기적으로는 법안이 연방 정부의 재정 건전성과 미국 국채 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법안이 시행되면 향후 10년에 걸쳐 연방 정부 부채를 3조4천억달러(약 4천640조원) 증가시킬 것으로 분석했다. 세수를 4조5천억달러(약 6천140조원), 지출을 1조2천억달러(약 1천640조원) 각각 감소시킬 것이라는 추정이다.
웰링턴 매니지먼트의 매크로 전략가 마이크 메데이로스는 "법안은 미국 국채와 관련한 구조적 우려 중 일부에 기여한다"며 "지속적인 재정 적자, 높은 부채 수준, 그리고 인플레이션과 관련한 우려"라고 말했다.
미국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외국 투자자들이 이미 미국 채권에 대한 관심을 잃고 있다는 경고를 최근 내놓은 바 있다.
연방 정부가 매주 5천억달러(약 682조원) 정도의 국채를 발행하는 가운데 수요가 더욱 감소하고 연방 정부의 차입 비용이 상승할 실질적인 위험이 존재한다고 경고했다.
블랙록 투자 매니저들은 "우리는 미국 정부의 부채가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는 점을 오랫동안 강조해왔고, 만일 이 문제가 계속 방치된다면 부채는 미국이 금융 시장에서 '특별한 지위'를 유지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법안이 투자 비용과 연구개발비를 전액 비용 처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다른 세제 혜택을 제공함에 따라 경제 성장을 촉진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부채 부담이 이러한 경제 활성화 효과를 제한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웰링턴 매니지먼트 컴퍼니의 채권 포트폴리오 매니저 켐페 굿맨은 법안이 내년 경제 성장에 최대 0.5%를 기여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시장이 연방 정부의 차입 비용 상승이라는 장기적인 위험에 너무 안일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F.L. 푸트남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최고시장전략가 엘렌 하이젠은 "법안이 기업 이익 성장을 가속할 것이고 이는 궁극적으로 주식 가치를 끌어올릴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이는 미국 국채 금리가 더 높은 수준에서 더 오래 지속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장기적으로 볼 때 많은 채권 상품의 매력이 다소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내셔널 얼라이언스 캐피털 마켓츠의 글로벌 채권 담당 책임자 앤드루 브렌너는 이날 투자자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미국 국채 매도세가 이른바 '채권 자경단'이 시장을 둘러싸고 있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그는 "채권 자경단들은 더 많은 재정 적자 감축을 원한다. 그들의 견해는 트럼프와 의회가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채권 자경단은 인플레이션 징후가 나타나거나 정부의 재정·통화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국채를 대량으로 매도하는 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투자자들을 가리킨다.
한편 국제통화기금(IMF)은 법안이 중기적으로 재정 적자를 줄여야 한다는 IMF의 권고와 반대된다는 반응을 내놨다.
줄리 코잭 IMF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법안이 미국 연방 정부의 재정 적자를 증가시킬 것이라는 광범위한 공감대가 있고 미국은 재정 건전화 조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잭 대변인은 "IMF 입장에서 보면 미국이 재정 적자를 점차 줄여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을 확실히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점을 일관되게 강조해왔다"며 "물론 재정 적자 감축이 빨리 시작될수록 보다 점진적인 재정 적자 감축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몇 년간 IMF는 미국이 중산층을 포함하는 세금 인상을 통해 재정 적자를 해소할 것을 권고해왔다.
그러나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법안이 추가적인 미국 경제 성장을 촉진해 세수를 증가시킬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