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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범 구속 신청 검찰이 외면” 국가손배소 항소심 앞둔 유족 울분

중앙일보

2025.07.03 23:36 2025.07.03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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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여중생 사건 피해자 유족인 박모씨가 지난 5월 12일 사건 발생 4주기를 맞아 수사기관과 청주시를 비판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피해자 유족


‘청주 여중생 사건’ 유족 “영장 반려 납득 안돼”

“억울하게 세상을 등진 딸을 위해 끝까지 싸울 작정입니다.“

충북 청주에 사는 박모(53)씨는 4년 전 스스로 생을 마감한 딸(당시 14세)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딸에 대한 미안함과 답답한 마음에 정신과 약을 달고 산다. 박씨의 딸 A양은 중학교 2학년이던 2021년 성폭행 피해로 경찰 조사를 받던 중 그해 5월 12일 청주의 한 아파트에서 친구 B양과 함께 극단 선택을 했다. 숨진 두 여학생 모두 B양의 의붓아버지 원모(60)씨에게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다.


가해자 원씨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친족 강간죄) 등 혐의로 기소돼 징역 25년 형을 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박씨는 “형사재판은 끝났지만,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라며 “내 딸과 당시 계부와 함께 살던 또 다른 피해자(B양)의 성폭행 신고와 구체적 진술이 있었지만, 두 달 동안 영장 집행(체포·구속)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수사과정에서 가해자 분리가 이뤄지지 않았던 게 두 아이가 숨진 가장 큰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청주 여중생 사건’으로 알려진 원씨 성폭행 범죄는, A양 가족의 신고(2021년 2월 10일)와 B양의 정신과 상담을 맡은 의사의 신고(2021년 2월 27일)로 드러났다. 하지만 두 여학생이 숨지기 전까지 가해자 분리 조처는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이 체포영장(1회)과 구속영장(2회) 발부를 검찰에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성범죄 피해자로 경찰 조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주 여중생 2명을 기리는 추모제가 2021년 8월 청주 성안길 사거리에서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피해자 처지 고려 못해” 영장신청서 공개

검찰은 원씨가 2021년 2월 경찰에 임의 출석한 것으로 볼 때 도주 우려가 없다는 점을 최초 체포영장 기각 사유로 들었다. B양에 대한 영상물 녹화 촬영과 휴대전화 문자내역 등 자료 확보, 진술 분석 의뢰, B양 진술 신뢰성 등이 미흡했다는 이유로 2차례에 걸친 구속 영장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이 서류 접수 취소 방법으로 구속영장 신청을 반려한 날(2021년 5월 12일) A양과 B양은 세상을 떠났다. 그해 2월~3월께 B양 분리 보호에 나선 청주시는 “B양이 부친과 분리를 거부한다. 연락이 안 된다”는 이유로 계부와 떼어놓지 못했다.

박씨는 “피의자 구속 사유가 충분했음에도 검찰이 영장을 기각한 것은 위법하고, 청주시도 아무런 보호조치를 시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이유를 들어 박씨 측은 2023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유족의 청구를 기각했다. “당시 검사의 판단이 경험칙과 합리성을 인정할 수 없는 범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법원 판단이었다.

박씨는 다음 달 항소심 첫 변론을 앞두고 경찰이 작성했던 체포·구속 영장 신청서가 발부 요건을 갖췄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할 계획이다. 박씨는 “법원에 제출된 경찰 수사 관련 서류 목록을 열람하던 중 사건 당시 영장 신청서(3건)를 확인했다”며 “이 문서엔 사건 초기부터 경찰이 구속 수사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었고, 성폭행 피해 진술도 비교적 상세히 기록돼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서를 읽어보면 검찰의 보완수사 결정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친구의 계부로부터 성범죄 피해를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진 청주 여중생 A양의 유서. 이 유서는 A양의 부모가 유품을 정리하다 발견했다. 연합뉴스


경찰 “계부와 종속관계 여중생 분리 시급” 지속 요청

박씨가 확보한 경찰의 체포영장 신청서(21년 3월 10일 작성)에는 A양에 대한 성폭행 범죄 사실 외에도 의붓딸인 B양을 상대로 한 과거 범죄(2020년 12월 발생)가 기재돼 있다. 특히 B양이 정신과 진료를 받으며 “2개월 전에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배와 가슴을 만졌다. 과거에도 신체의 특정 부분을 추행했다”는 진술이 포함돼 있다. A양의 진술에 대해 경찰은 “아동이 허위로 가공하기 어려운 진술로써, 그 신빙성이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경찰은 계부 원씨의 재범 가능성을 언급하며 “A양을 성폭행한 후에도 의붓딸인 B양을 시켜 ‘우리 아빠가 술 한잔하자는데’라는 문자를 보낸 것으로 미뤄 추가 범행을 시도하고 있는 상태”라고 우려했다. 피해자인 B양이 종속 관계에 있는 계부와 동거하고 있어 공무원과 경찰 면담이 차단된 점, 친모가 수원에 떨어져 있는 데다 범행을 방조하고 있는 점 등을 체포 영장 발부 사유로 들었다.


박씨는 “ 2021년 3월 18일 구속영장 신청서에는 입에 담기 힘든 B양의 성폭행 피해 상황이 더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다”며 “B양이 피의자 지배를 벗어날 때만 성폭행 피해 진술을 하고 있다는 내용까지 넣었음에도 구속 영장을 발부하지 않은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검찰이 아동학대와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기계적인 잣대를 들이미는 관행을 바꿔야 한다”며 “2021년 아동학대가 의심되면 지자체가 피해 아동을 즉시 분리를 하는 제도가 시행됐음에도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한편 검찰은 재판 과정에서 박씨가 제기한 부실 수사와 구속 영장 등의 반려 이유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청주시는 “B양의 의사에 반하는 강제 분리가 어려웠으며, 이 같은 사유가 두 여학생의 사고와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박씨에게 보냈다.



최종권([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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