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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새 정부 출범 한 달, 도처에 외교·안보 시험대

중앙일보

2025.07.04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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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난 6월 4일 이 대통령 취임 이후 한미 정상의 직접 대면과 정상회담이 계속 늦어지고 있다.[EPA=연합뉴스]


미·중 양쪽에서 압력과 변수 몰려와



한·미 정상회담 조기 개최 노력하고



중 전승절 초청은 신중하게 다뤄야

이재명 정부 출범 한 달이 지나면서 국내적으로는 12·3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 후유증을 빠르게 수습하는 양상이다. 한국갤럽이 어제 발표한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65%나 나왔을 정도로 순항 중이다.

하지만 나라 밖을 보면 거센 파도는 여전하다. 패권 경쟁이 치열한 미국과 중국 양쪽에서 다양한 압력과 변수들이 생기고 있다. 이념과 가치보다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새 정부의 실용외교가 출발 단계부터 시험대에 오른 모양새다.

가장 큰 리스크는 한·미 관계다. 동맹과 우방조차 거래 대상으로 여기는 트럼프 2기 정부 들어 한·미 동맹은 계속해서 시험받고 있다. 미국 당국자들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언급해온 만큼 조만간 감축이나 재배치 요구가 올 가능성이 있다. 시한(8일)이 다가온 관세 협상이 다급한 상황에서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2.3% 수준인 국방비를 5%까지 인상하라는 미국의 압력은 새 정부에 큰 부담 요인이다.

이런 난제들을 풀려면 한·미 정상회담이 조속히 열려야 할 텐데, 만날 기약이 없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서 한·미 정상 회동이 불발됐는데, 8일로 예정됐던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의 방한마저 갑자기 취소됐다. 미·일 관세 협상이 뜻대로 잘 풀리지 않자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은 버릇없다”며 발끈한 직후라 예정된 방일을 전격 취소하면서 한국에도 불똥이 튄 것으로 보인다. 그가 방한했으면 한·미 정상회담 조기 개최 일정과 의제 조율이 가능했을 텐데 매우 아쉽다.

전임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1일 만에 정상회담이 성사됐는데, 이 대통령의 방미와 정상회담은 기대보다 지연되고 있다. 늦어도 8월 중엔 정상회담이 성사되도록 다양한 채널을 적극적으로 가동할 필요가 있겠다. 미국발 관세전쟁은 가뜩이나 어려운 한국경제의 주름살을 더 깊게 패게 하는 문제라 돌파구가 절실하다. 상호관세 추가 유예 협상 등을 위해 주말에 미국으로 가는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의 어깨가 무겁다.

중국 변수도 새 정부의 고심을 깊게 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시절 북한·중국·러시아와 대립각을 형성했다면 이재명 정부는 관계 개선을 모색 중이다. 이런 가운데 시진핑 국가주석이 오는 9월 3일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 전승절(戰勝節) 행사에 이 대통령을 초청해 새 정부의 고심이 깊어졌다.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이 천안문 성루에 올랐다가 후폭풍을 맞은 전례가 있는데다, 미국이 새 정부의 친중 성향을 예의주시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국가안보실을 중심으로 이 문제를 고도로 민감하게 취급해야 할 것이다.

새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등 북한에 잇따라 유화 조치를 결단했지만, 북한이 앞으로 얼마나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교전 중인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해 남북 대화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북한은 러시아에 추가 파병을 추진하며 핵·미사일 뿐 아니라 재래식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는 만큼 남북 관계는 속도 조절하면서 위기관리에 집중하는 것이 상책이다.

이 대통령은 그제 기자회견에서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은 한·일 관계를 거론하며 “오른손으로 싸워도 왼손은 서로 잡는다”며 유연한 접근을 강조했다. “정치와 외교에서 철저히 감정을 배제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한·미 동맹을 튼튼히 다지는 한편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면서 북·중·러와의 관계 복원 기회를 찬찬히 도모하기 바란다. 이런 기조로 새 정부 앞에 놓인 외교·안보 장애물을 하나씩 넘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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