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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거둔 8700원 탈취…1915년 광복 꿈꾼 대구 비밀조직

중앙일보

2025.07.0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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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일제의 박상진·김한종 의사에 대한 대한 판결문.[사진 국가보훈부 제공]
1915년 12월 24일 경북 경주 효현교. 권총을 든 청년 2명이 대구로 향하던 일제 우편마차를 습격해 현금 8700원(현재 추정 화폐가치 약 3억원)을 빼앗았다. 이 돈은 일제가 경주·영덕·영일(현 포항) 등 3개 군에서 거둔 세금이었다. 이틀 뒤 ‘매일신보’ 3면에 ‘세금 운송마차탈취 대사건’이라는 기사가 대대적으로 실렸다. 총독부는 광복 때까지 사건 실체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는 대구에서 광복을 꿈꾸며 고헌 박상진 의사(1884~1921)를 중심으로 결성된 항일운동단체 ‘광복회’의 첫 거사였다. 국가보훈부는 광복 80주년을 맞는 2025년, ‘7월의 독립운동’으로 광복회를 선정했다.

광복회는 1915년 7월 대구 달성공원에서 결성됐다. 대구는 광복회를 비롯, 같은 해 안일사에서 ‘조선국권회복단’이 결성되는 등 일제강점기 초기 비밀결사 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 곳이다.

광복회는 만주에 무관학교를 설치해 일제와 무장투쟁을 전개하면서 독립을 달성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독립군 양성과 군자금 모금, 친일 세력 처단, 일제의 금품 수송 탈취 등의 독립운동을 했다. 또 대구 상덕태상회, 영주 대동상점, 중국 단동 안동여관과 삼달양행, 장춘상원양행 등 상업 조직으로 위장한 국내·외 활동 거점은 자금 조달과 연락 업무를 수행했다.

친일파 처단에도 나섰다. 박상진 총사령은 조선총독 처단을 시도했으며, 각 지부에서는 친일 관리와 부호들을 처단했다.

하지만 광복회는 1918년 1월부터 일제의 대대적인 탄압으로 인해 많은 회원이 체포되면서 사실상 와해됐다. 김한종·김경태·박상진·채기중 등 주요 인사들은 사형을 선고받아 순국했다. 그러나 광복회의 정신은 1919년 3.1운동 이후 독립운동단체인 주비단(籌備團)과 광복단결사대 등으로 계승되며 명맥을 이어갔다.

독립전쟁론의 선구자로 무력항일투쟁에 몸을 던진 광복회 총사령 고헌(固軒) 박상진(朴尙鎭) 의사. 사진 독립기념관

한편, 광복회 조직을 기념하는 행사는 다음 달 15일 대구 달서구 대구문화예술회관 비슬홀에서 열린다. 국가보훈부 관계자는 “광복회는 의병 운동과 계몽 운동을 추구한 독립운동가들이 독립이라는 목표 아래 통합 활동하는 모범을 제시했다”며 “광복회는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추고 민족적 역량을 결집하는 등 1919년 3.1 운동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기반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국가보훈부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사를 기억하기 위해 국민의 추천을 받아 매달 ‘이달의 독립운동’을 선정하고 있다. 광복회 외에 국민이 추천한 7월의 독립운동은 독립협회 결성(1896), 동제사 조직(1912), 조선물산장려회 발기(1920), 대한인동지회(1921), 대전자령 전투(1933), 쑤저우 학병 탈출(1944), 부민관 투탄 의거(1945) 등이 있다.



백경서([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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