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용은 지난 4일 포항 송라면 포항 스틸러스 클럽하우스에서 열린 입단 기자회견에서 “지금은 올 시즌이 마지막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동계 훈련을 시작할 때부터 그런 각오로 준비했다. 시즌 후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현재로선 은퇴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3일 공식 발표를 통해 포항 이적을 확정한 기성용은 2025시즌까지 계약을 체결했다. 서울을 떠나 포항으로 향한 이번 결정에 대해 그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서울에서 내 자리가 없다고 느꼈다. 그게 가장 아쉬웠다”라고 이적 이유를 설명했다.
서울의 레전드인 기성용은 서울에서 지난 4월 대전하나시티즌전 이후로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부상으로 잠시 쓰러졌으나 하지만 회복한 상태에서도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결국 김기동 감독과 미팅을 통해 훈련은 소화하고 있었기에 이적을 택한 것.
서울 팬들은 기성용의 이적에 폭발했다. 지난달 2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포항과 홈 경기(서울 4-1 승)도 경기 내용보다는 서울 팬들의 항의가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이들은 장례식 퍼포먼스와 트럭·플래카드 시위로 김기동 감독과 구단을 거세게 비판했다.
완승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김기동 나가!"라는 구호와 야유가 울려 퍼졌다. 서울 팬들의 분노는 종료 휘슬이 불린 뒤에도 가라앉지 않았다. 일부 팬들은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서울 구단 버스를 막은 채 "김기동 나가!"를 외치는 등 물리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출동해 흥분한 팬들의 대치를 막아세웠다.
팬과 구단, 감독 사이에 깊은 균열이 생긴 상황. 서울 구단과 김기동 감독, 유성한 단장이 포항전 직후 간담회를 통해 팬들과 만나 여러 가지에 대해서 설명했다. 팬 50명과 대면해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어느 정도 사태를 진정시킨 상태다.
한편 기성용은 서울에서의 마지막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은퇴도 고려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를 다시 움직이게 만든 건 가족이었다. “딸이 왜 경기에 안 나가냐고 물었다”며 “나이가 많아서 그렇다고 설명했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보고 마음이 흔들렸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에게 경기장에서 멋지게 뛰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대표팀에서의 마무리 또한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기성용은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서 부상으로 대회를 마무리한 뒤 A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바 있다. 그는 “그때도 다쳐서 물러났고 이번에도 그렇게 끝난다면 평생 후회가 남을 것 같았다”며 “그래서 다시 한 번 도전하기로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포항 입단 결정에는 익숙한 인연들도 큰 영향을 미쳤다. 박태하 감독과 동료 신광훈 등 과거 인연이 있는 이들이 있다는 점, 그리고 팀의 분위기와 환경이 과거 영국에서 뛰던 시절을 연상시킨다는 점이 마음을 움직였다고 한다.
기성용은 “포항은 외부에서 보더라도 전통 있는 팀이라는 인상을 받아왔다. 훈련 환경도 뛰어나고, 팀 전체가 끈끈하다. 훈련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인상적”이라며 “포항 시민들도 이틀밖에 안 됐는데도 따뜻하게 맞아줬다. 사랑받는 느낌을 확실히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자회견에서 소셜 미디어 노출에 대해 언급하며 “첫날부터 많이 시키시더라. 그게 다 사랑이라고 생각했다”며 웃어 보인 그는 “식당에서 식사하는데 사인을 요청받기도 했다. 서울에서도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포항에서는 더 격렬한 환대를 받고 있다. 연고도 없는 도시인데 이렇게 반겨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어 “팬들의 환대는 큰 힘이 된다. 경기장에서 뛰는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가 생긴다”며 “이곳에서 마지막 시간을 후회 없이 보내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번 시즌 20경기 무패 행진을 달리고 있는 전북에는 과거 기성용의 선더랜드 시절 은사인 거스 포옛 감독이 있다. 기성용은 “무리할 생각은 없지만 몸 상태를 최대한 끌어올려박태하 감독님과 상의하겠다. 포옛 감독님이 계신 전북과의 경기라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경기장에서 뛸 수 있는 1분 1초가 지금의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하다. 서울에서 단 1분이라도 뛸 수 있었다면 이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며 “포항에서는 남은 시간들을 정말 소중히 여기며 뛰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아시아 축구연맹(AFC)은 해당 사신을 전하면서 "기성용은 한국 대표팀의 전설이다. 해외 리그와 한국 대표팀서 꾸준히 오랜 시간을 보낸 그는 K리그에서는 서울서 데뷔하고 서울서 오랜 기간 뛰었지만 아쉽게 마무리하게 됐다"라면서 "새 도전에 나서는 그가 한국의 2024년 FA컵 우승팀 포항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