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색 비단과 고급스러운 한지로 두세 겹 둘러싼 정갈한 포장부터 남달랐다. 두 손으로 움켜잡았는데 생각보다 묵직했다. 조심스럽게 열어보니 1㎏짜리 순금 골드바였다. 정확히 10개. 요즘 시세로는 개당 1억5000만원, 부가가치세를 더하면 1억7000만원쯤 된다. 그게 10개니까 실구매가는 17억원이다.
수십 년 경력의 상류층 커플 매니저 A씨는 더중앙플러스와 인터뷰에서 요즘 ‘재벌가 0.1% 결혼’ 중 예물·예단 트렌드를 이렇게 전했다. 최고의 안전자산으로 불리는 금이 최고의 예단으로 꼽힌다는 설명이다. 그는 “신랑 측에서 50억~100억원 수준의 신혼집을 마련하면 신부 쪽에선 10억, 20억원 단위로 골드바를 선물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의 말대로 재력가 집안 사이에서 금괴는 신부 측이 신랑 측에 보내는 예단에 포함되는 핵심 리스트다. 최근 10년 새 현금 부자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저금리에다 경제가 불안할 때 금의 가치가 재벌가 혼사에서도 새삼 부각되고 있는 것. 이 기간에 금값이 세 배로 뛰었으니 재테크로도 현명한 수단이었던 셈이다.
여느 결혼식과 마찬가지로 ‘그들만의 결혼식’도 절차의 출발은 상견례다. 서로의 집안 내력과 예비 며느리·사위에 대한 ‘크로스 검증’을 마친 상태라 분위기는 대체로 화기애애하다. 그다음 약혼과 결혼식 등 ‘길일’을 잡는다. 커플 매니저 A씨는 “일부 독실한 기독교 집안을 제외하면 명문가일수록 양가 사주를 기반으로 역술인이나 풍수 전문가에게 결혼식 날짜를 의뢰한다”며 “대개는 음력으로 ‘손 없는 날’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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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력도 재력이지만 정성 남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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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 결혼식의 ‘실질적인’ 시작은 예단과 예물, 그리고 함이다. 여기서 이들이 얼마나 전통과 품격,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는지, 신랑·신부의 새 출발에 어떤 메시지를 담는지, 양가에 대해 어떻게 예의를 갖추는지 등을 가늠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선 다른 집안과 비교해 어떻게 체면을 세우는지도 추정 가능하다.
돈으로 따지면 얼마나 될까. 재벌가 결혼식 비용은 신혼집을 포함해 100억~130억원까지도 든다. 일반 가정의 결혼 비용과 비교해 많게는 37배 차이가 난다.
신부 측에서는 시댁에 들어갈 예단, 신랑 측에선 신부 집으로 함을 언제 어떻게 보낼지 등을 준비한다. 과소비 논란이나 ‘소음 민폐’ 때문에 요새는 일반 가정에선 대부분 사라졌지만, 재벌가에서는 요새도 함을 주고받는다. 형식은 과거보다 조용해진 대신 내용은 고급스럽다. 함진아비와 신랑 친구들이 문 앞에서 정중히 노크하면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가 있고, 그다음에 예단을 내려놓는다. 이러면서 서로의 네트워크가 탄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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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소하면서 최고급”…요즘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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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예물과 예단은 예식 전 핵심 세리머니다. 금괴는 현금 부자나 신흥 사업가가 선호하는 선물.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재벌가나 정계 집안에서는 유명 작가의 그림, 고가 예술품, 문화재급 도자기 같은 예술품을 주로 주고받는다. 한정판 명품도 등장한다.
예단은 신부 측에서 신랑 댁으로 보내는 선물을 뜻한다. 보석과 한복부터 명품 가방, 침구, 반상기 등이 리스트에 포함된다. 조용하면서도 품위 있게 행사를 치른다고 하지만 ‘억’ 소리가 난다.
백미는 주얼리다. ‘찐’ 상류층은 웨딩 주얼리 구입 방법부터 다르다. 까르띠에, 불가리, 티파니 등 명품 브랜드의 책임자급 매니저가 혼수 세트를 들고 고객의 집으로 찾아간다. 베테랑 보안요원과 함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