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부산 중구 남포동 자갈치시장에서 만난 이모(86)할머니의 한탄이다. 52년째 노점상을 하는 그는 “사람들 눈에 띄는 길바닥에 있어도 하루 5만원치 파는데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장사가 더 안될 게 뻔하다”고 했다.
부산시가 불법 노점(露店)을 정리하기 위해 2014년부터 235억원을 들여 지난해 말 자갈치아지매시장 신축건물(1동 면적 2441㎡·2동 면적 1827㎡, 각 3층)을 완공했지만, 노점 상인 200여명은 입점을 거부하고 있다. 매장 면적은 좁아지고, 월세를 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6월말 개장하려던 계획은 무산됐고, 올해 추석 연휴 전 개장도 물 건너간 상태다. 2015년 노량진 현대화 수산시장에 상인들이 입점을 거부하며 4년 넘게 수협과 갈등을 빚었던 상황과 비슷하다.
부산시가 상인회와 지난 4월부터 ‘소통 TF’를 구성하고 4차례 회의를 한 결과 시설 문제는 합의점을 찾아가고 있다. 유재인 자갈치아지매시장 상인회장은 “해수 수압 상승, 화장실과 화물용 엘리베이터 추가 설치 등 상인회 요구사항이 대부분 받아들여졌다”며 “지난 4월 입점 추첨에 아무도 응하지 않자 부산시가 많이 양보한 결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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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심 야박’ 소문난 자갈치시장…입점하면 월 납부액 10배 이상↑
사용료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자갈치시장 노상 약 300m 구간에서 영업하던 상인들은 한 달 전기사용료로 5만원 정도 내는 게 전부였다. 자갈치아지매시장에 입점하면 사용료와 관리비로 월 53만원~180만원을 납부해야 한다. 30년째 꼼장어집을 운영하는 오모(72) 할머니는 “코로나19 이후 외국인 관광객은 물론 국내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며 “자갈치시장 전성기 때와 비교하면 매출이 10분의 1로 줄었는데 월세를 낼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이날 30도가 넘는 더운 날씨와 부둣가에 정박한 선박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캐한 매연 냄새 탓에 자갈치시장은 한산했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도 구경만 할 뿐 생선을 사거나 꼼장어 포장마차에서 음식을 먹는 손님은 드물었다. 40년간 노점을 한 강모(83)할머니는 “자갈치시장 인심이 야박하다는 인식과 제사를 안 지내는 문화 등이 겹쳐 생선을 사 가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며 “월세를 낮춰주지 않으면 입점을 포기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입점하면 ‘원산지 표시의무’까지 생겨 입점을 꺼리는 상인들이 많다.
상인회는 노점상인의 20%가량이 입점을 포기할 것으로 예상한다. 또 다른 자갈치아지매 상인회를 맡은 정재우 회장은 “노점상인 200여명 중 40여명은 입점을 포기할 것 같다”며 “상인 70%가 70대 이상인데, 장사를 포기하고 기초생활수급비를 받는 게 낫다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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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내년 초 개장 예정…도로정비 후 관광명소 만들 것”
부산시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부산시 수산진흥과 관계자는 “사용료를 낮추려 해도 다른 상가와의 형평성 문제, 노점 상인에 대한 특혜 논란이 일 수 있다”며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사용료를 낮춰도 될지 인근 상인들과 조율 중”이라고 말했다.
자갈치아지매시장 시설 노후화가 진행되고 있어 입점을 마냥 연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유 회장은 “배수관로에 녹이 슬고, 보일러 등 기계 부식이 시작됐다”며 “사용을 안 하니 부식이 더 빠르다”고 말했다. 부산시와 상인회는 올해 말 입점 추첨을 마무리하고, 내년 설 연휴 전에는 개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부산시는 내년 초 자갈치아지매시장이 개장하면 홍보를 강화하고, 주변 도로 정비사업으로 상권 활성화를 꾀할 방침이다. 부산시 수산진흥과 관계자는 “위생과 안전관리를 하면서 크루즈 관광객을 적극적으로 유치할 것”이라며 “정비된 도로에 버스킹 공연 공간을 마련하는 등 자갈치아지매시장이 관광명소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