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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문인회 시화집·세계지도…英소장 문화유산 디지털로 재조명

연합뉴스

2025.07.05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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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 한국문화원, 英수장고의 희귀본 이미지 수집·의미분석 데이터화 인왕산 문인동호회 '옥계사' 시화집…"'풍류' 조선 지식인의 클럽문화" 안정복의 세계지도…"서양과학 이해하려던 조선 실학자의 선구적 작업"
조선후기 문인회 시화집·세계지도…英소장 문화유산 디지털로 재조명
주영 한국문화원, 英수장고의 희귀본 이미지 수집·의미분석 데이터화
인왕산 문인동호회 '옥계사' 시화집…"'풍류' 조선 지식인의 클럽문화"
안정복의 세계지도…"서양과학 이해하려던 조선 실학자의 선구적 작업"


(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18세기 인왕산 문학 동호회의 시화집, 조선 실학자가 만든 세계지도, 19세기 개화기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동사변형 문법책 등 영국 수장고에 잠들어 있던 희귀 문화유산들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주영한국문화원은 영국 주요 기관이 소장한 한국 문화유산을 디지털 이미지로 수집, 정리해 오는 17일(현지시간) 개막하는 '염화미소:인공지능과 문화유산'에서 일반 공개한다고 6일 밝혔다.
문화원이 2023년부터 영국 도서관과 옥스퍼드대 보들리언 도서관, 빅토리아앤드앨버트(V&A) 미술관, 국립아카이브 등을 돌며 수장고나 서가에 있는 한국 문화유산의 이미지를 수집하고 그 내용과 의미를 분석해 데이터화하는 장기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이에 따라 한국에도 남아 있지 않은 유일본 또는 희귀본을 포함해 그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문헌 여러 점이 디지털 이미지로 한데 모여 대중과 만날 수 있게 됐다.
대표적인 작품이 영국 국립 도서관인 영국도서관이 소장한 '옥계사(玉溪社)'로, 조선 후기 활발했던 여항 문인(중인 지식인층)들의 활동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문헌으로 평가된다.
인왕산 옥계 지역에서 결성된 문학 모임인 옥계사 또는 옥계시사(詩社) 회원들이 쓴 시를 모으고 그림을 곁들인 이 책은 1791년(신해년) 제작된 후 1818년(무인년)에 개수됐다.

특히 서화가 임득명이 그린 풍경화는 옥계에서 가진 모임의 모습을 운치 있는 풍경 속에 담아내 옥계십경(玉溪十景)이라는 이름으로 엮여 있다. 모임의 취지를 알리는 서문과 모임 규칙, 회원 명단도 담고 있어 모임의 존재와 활동상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선승혜 문화원장은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 풍류 있게 그림도 그리고 시를 쓴, 조선의 지식인 클럽 문화"라며 "영국 18세기 시민문화가 커피하우스에서 모여 사상을 공유한 것이라면 조선에서는 산수를 배경으로 차를 마시면서 담론을 나눴다"고 소개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옥계사'의 3가지 서문을 분석한 선 원장은 지란지교와 같은 우정, 측은지심과 같은 정서적 교류, 정성을 다하는 결속이 옥계사 모임의 의의로 제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사단은 그 도리가 아름답고 무(武)와 성(成)의 법도가 마련된 것이다. 규정에는 가감이 없도록 하여 한결같이 약속을 따르게 하였고 각자가 마음속에 새기기를 바람으로써 이 일이 오래도록 성대하게 이어지기를 빈다." (임득명의 서문, 선승혜 해석)
옥계사 시화집은 예전에는 영국도서관 온라인 아카이브를 통해 볼 수 있었지만, 2023년 10월 영국도서관이 사이버공격을 받은 이후로 복구가 완료되지 않아 현재는 볼 수 없는 상태다. 문화원은 이번에 시화첩 전체 이미지를 선보인다.
영국 명문 옥스퍼드대 도서관이 소장한 18세기 세계지도도 전시에서 소개된다. '동사강목'으로 잘 알려진 조선 후기 실학자 안정복(1712∼1791)의 영고양계요동전도(寧古兩界遼東全圖)다.

원문 제목은 조선과 중국 접경 지역을 중심으로 한 지도라고 돼 있으나 세계지도다. 옥스퍼드 도서관 도록의 영문명 역시 '한국어로 된 세계 지도'(Map of the World in Korean)다.
이 지도의 디지털 이미지를 살펴본 오상학 제주대 지리교육과 교수에 따르면 이는 지구의 제작을 위한 지도처럼 적도를 12등분해 지구를 12개의 배 모양으로 나눠 그린 주형도(舟形圖)다.
저서 '독사상절'에 세계지도와 자세한 중국지도를 수록할 만큼 지리학에 조예가 깊었던 안정복이 그러한 식견을 바탕으로 주형도를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설명이다.
오 교수는 "안정복이 주형도를 제작해 실제 지구의 제작까지 이어졌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그의 주형도 제작은 지구설 이해의 과정에서 이뤄졌다"며 "조선 실학자들이 서양 과학을 이해하려 했던 선구적 작업으로 높이 평가될 만하다"고 짚었다.
오 교수는 "옥스퍼드 소장 주형도는 현존하는 조선시대 단독 주형도로는 유일본으로 알려져 있는 희귀본으로, 앞으로 실사에 바탕을 둔 심도 있는 조사,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밖에 8월 22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에서 디지털 이미지로 선보이는 영국 기관 소장 유산으로는 순조가 혜경궁 홍씨의 관례 60주년 진찬(궁중 잔치)을 그린 '기사진표리진사의궤'(이하 영국도서관), '채제공 초상화', 상태가 좋은 것으로 평가받는 '홍길동전' 한글본, 그리고 V&A박물관의 '혼례복 자수'가 있다.
영조의 장례 행렬을 그린 '국장도감의궤반차도'(이하 옥스퍼드대 보들리언 도서관)와 '동사 하다의 종결형', 국립아카이브의 '조영수호통상조약' 영국 보관본, 케임브리지대 피츠윌리엄 박물관의 고려청자, 케임브리지대 도서관의 방각본 한글소설 '정수정전', '임장군전', '조웅전' 등도 선보인다.
선승혜 원장은 이번 전시에 대해 "조선시대 등 우리 문화를 세계사적 관점에서 생각해 볼 기회이자, AI를 활용해 한류의 역사적 맥락을 조명하고 21세기 문화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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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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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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