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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는 근로자, 기상캐스터는 아니다? 정부가 밝힌 7가지 잣대

중앙일보

2025.07.05 22:54 2025.07.05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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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프리랜서 아나운서는 근로자지만, MBC 기상캐스터는 아니다.

비슷한 일을 해도 누구는 근로자이고, 누구는 아니다. 근로자로 인정되느냐 여부는 곧 강력한 노동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와 직결된다. 최근 MBC 기상캐스터 오요안나가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한 일을 계기로, 근로자성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특히 이재명 정부가 ‘근로자 추정제도’ 도입을 공약한 만큼, 관련 논의는 앞으로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지난해 9월 숨진 전 MBC 기상캐스터 오요안나씨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사진 인스타그램 화면 캡처
6일 국민의힘 김소희 의원실은 오요안나 등 MBC 기상캐스터 사건과 2020년 근로자로 인정된 KBS 아나운서 사건을 비교해 달라고 고용노동부 요청해 받은 결과를 공개했다. 상반된 판단이 내려진 두 사례를 놓고, 근로자성 판단 기준의 일관성을 점검해보자는 취지다. 고용노동부는 두 사건 간 일곱 가지 차이점을 제시하며, 오요안나 등 기상캐스터는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속성’...아나운서·기상캐스터 판단 다른 이유

김주원 기자
비교표에 따르면, ‘계약된 프로그램 이외’의 업무 수행 여부, ‘별도로 방송출연’을 했는지, ‘정해진 회의에 참여했는지’ 등이 근로자성 인정 여부를 가르는 주요한 차이점으로 제시됐다. 또 기상캐스터는 타 방송 출연이나 외부 영리 활동이 자유롭다는 점에서 KBS 아나운서와 달리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고용노동부는 지목했다.

이 외에도 특별감독결과에서 고용노동부는 원고 초안 작성 등에서 상당한 지휘 감독이 없었고, 정해진 출퇴근 시간도 없었다는 점을 들어 기상캐스터를 근로자로 보지 않았다.

대법원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여부를 판단할 때,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노무를 제공했는지 여부를 핵심 기준으로 본다. 구체적으로는 ▶상당한 업무 지시와 감독이 있었는지 ▶근무 장소와 시간을 지정했는지 ▶노무 제공의 대가로 정기적인 임금이 지급되는지 ▶사용자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돼 있는지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재량이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이에 대해 김유경 노무법인 돌꽃 노무사는 “비교표에서는 ‘전속성’을 근로자성 판단의 핵심 기준으로 삼았지만, 최근 대법원은 사용자의 상당한 지휘·감독 여부와 업무 결정 주체를 보다 중요하게 보고 있다”며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형태로 뉴스를 진행하는 방송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 두 가지 요소는 충분히 인정될 수 있었는데도 특별감독 결과에서는 방송업의 특수성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았고 부수적인 요소로 근로자성을 부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오요안나 기상캐스터의 유족들 역시 고용노동부의 판단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근로자 추정제도 도입 땐 근로자성 논란 가열될 듯

근로자성 판단은 각종 근로기준법 보호 규정의 적용 여부를 가르는 출발점이기 때문에 늘 논란의 중심에 있다. 한국 노동법은 해고 요건, 임금, 근로시간, 휴식 등에서 강력한 보호를 제공하지만, 이는 ‘근로자’로 인정된 경우에만 가능하다.

최근 플랫폼 노동자나 프리랜서 등 새로운 고용 형태가 확산되면서 누가 근로자인지를 둘러싼 경계가 모호해졌고, 이에 따른 분쟁도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이재명 정부가 대선 공약으로 내건 ‘근로자 추정제도’ 도입이 검토되면서 관련 논란은 더 거세질 전망이다.

근로자 추정제도가 도입되면 지금처럼 근로자가 스스로 소송을 제기해 근로자임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를 우선 근로자로 간주하고 사용자가 ‘근로자가 아님’을 증명해야 한다. 이로 인해 근로자 여부를 둘러싼 소송은 더욱 활발해질 수밖에 없다. 사용자가 입증 책임을 지게 되면서 법적 분쟁의 문턱이 낮아지고, 경계에 있는 다양한 형태의 노무 제공자들이 근로자 지위를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부작용 우려도 만만치 않다. 김종윤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근로기준법은 근로계약, 임금, 근로시간, 해고 제한은 물론 직장 내 괴롭힘까지 포괄적으로 규율하며, 위반 시 형사 처벌 규정도 광범위하게 적용된다”며 “이런 구조에서 노무 제공자를 일단 근로자로 추정하게 되면 무죄 추정 원칙과 충돌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개정안이 별다른 보완책 없이 시행될 경우, 사업자들이 해고 제한 등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워지면서 고용을 줄이거나 플랫폼 사업 자체를 회피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근기법 확대 vs 별도 입법…노동자 보호 해법은?

여당은 대체로 기존 근로기준법의 적용 범위를 확장해 보호 대상을 넓히는 방향에 무게를 두고 있다. 김태년·박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을 일단 근로자로 추정하고, 근로자성 판단을 위한 입증 책임을 사용자에게 전환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별도의 입법을 통해 새로운 보호 체계를 만들려는 시도도 있다. 김소희 의원 외 국민의힘 의원 40인은 ‘일터에서의 괴롭힘 예방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을 공동 발의해, 5인 미만 사업장과 특수고용직, 프리랜서까지 포괄하는 보호 장치를 제안했다. 또한 장철민·이용우 의원은 고용 형태와 무관하게 권리를 보장하는 ‘일하는 사람 보호법’을, 국민의힘도 비슷한 취지의 ‘노동약자 지원법’을 발의한 바 있다.

권혁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악의적 사용자로부터의 법 회피를 막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도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여전히 근로기준법 적용이 되지 않아 약자 보호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하는 방식이 다양해진 지금, 단순한 노사 이분법이나 일괄적 법 확장보다는 다양한 노동 형태에 맞춘 정밀하고 유연한 보호 체계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연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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