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와 호주를 거친 ‘장신 프로골퍼’ 박혜준(22)이 4년간의 기다림을 끝내고 생애 처음으로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박혜준은 6일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파72·6684야드)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롯데 오픈 최종라운드에서 버디 3개와 보기 1개로 2타를 줄여 17언더파 271타로 우승했다. 노승희(24)가 18번 홀(파5) 이글로 16언더파 동타까지 따라왔지만, 같은 홀에서 버디를 잡아 정상을 밟았다. 이로써 우승 상금 2억1600만원과 함께 올해 10월 열리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롯데 챔피언십 출전권을 수확했다.
노승희에게 1타 앞선 15언더파로 최종라운드를 출발한 박혜준은 티샷이 벙커로 빠진 파3 3번 홀을 파로 막았다. 이어 4번 홀(파4)과 5번 홀(파4)에서 연속 버디를 잡아 한때 5타 차이까지 달아났다. 우승이 가까워졌던 박혜준은 경기 중반 들어 타수를 줄이지 못하면서 이다연(28)에게 1타 차이로 따라잡혔다. 또, 노승희가 18번 홀에서 8m짜리 이글 퍼트를 성공시켜 16언더파 공동선두가 됐지만, 박혜준이 이 홀에서 40㎝가 채 되지 않는 버디 퍼트를 떨어뜨려 우승을 확정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클럽을 잡은 박혜준은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영어와 골프를 함께 배우기 위해 부모님과 함께 피지로 유학을 떠났다. 그러나 골프 저변이 좁은 피지보다는 인근의 호주가 낫다고 판단해 몇 개월 뒤 호주로 거처를 옮겼다. 골드코스트 해안가에서 실력을 키운 박혜준은 원래 LPGA 투어로 진출할 생각이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미국행의 여의치 않아지자 한국으로 눈을 돌렸다.
고국에서의 여정도 순탄치는 않았다. 2021년 귀국한 박혜준은 그해 2부 투어를 거쳐 ‘지옥의 레이스’라고 불리는 1부 투어 시드전에서 3위를 기록해 KLPGA 투어 데뷔를 확정했다. 그러나 이듬해 상금 순위 71위로 부진(상위 60명이 내년 시즌 시드 확보)하면서 자리를 잃었고, 2023년 2부 투어 활약(상금 8위)을 앞세워 지난해 다시 1부 투어로 올라왔다.
박혜준의 최대 장기는 큰 키(1m77㎝)에서 나오는 호쾌한 장타다. 2022년 평균 드라이브샷 비거리 246.34야드로 이 부문 11위를 기록했고, 이후에도 20위권을 지키면서 타고난 롱게임 실력을 자랑했다. 지난해 개막전인 두산 위브 챔피언십에서 황유민(22)과 우승 경쟁을 벌이며 처음 이름을 알린 박혜준은 오랜 기다림을 끝내고 개인 통산 73번째 대회에서 찾아온 우승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한편 LPGA 투어에서 뛰고 있는 최혜진(26)과 김효주(30)는 나란히 8언더파 공동 18위를 기록했다.
경기 내내 특유의 미소를 잃지 않은 박혜준은 “오랫동안 바랐던 순간을 맞이해서 기쁘다. 어제 3라운드 때 샷이 정말 좋아서 오늘은 나를 믿고 플레이하려고 했는데 기대와 달리 샷이 흔들려 경기가 쉽지 않았다”면서 “혹시나 긴장할까 봐 캐디와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긴장감을 풀었다. 노승희 언니가 이글 퍼트를 넣었을 때도 크게 떨지는 않았다. 내 버디 퍼트가 이전까지 수만 번도 더 쳤을 거리라서 담담하게 기다렸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어 “올해 목표를 2승으로 잡았다. 다음 우승도 빨리 추가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 또, 부상으로 10월 롯데 챔피언십 출전권도 경험의 계기로 삼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