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오는 8일로 예정됐던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유예 기한을 미루는 방안을 미측과 논의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미국에 제조업 분야에서의 협력 방안을 제시하며, 품목 관세를 철폐해달라고 요청했다.
6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만나 미 측의 관세 조치에 대한 협상을 이어갔다. 이번 만남에서 여 본부장은 ‘상호호혜적 제조업 협력 로드맵’을 제안했다.
미국과의 제조업 공급망을 강화하고, 조선업·반도체·배터리·전기차 등 첨단 제조업 분야에서 협력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이다. 여 본부장은 그리어 대표와의 면담에 앞서 취재진에게 “관세 협상과 4~5년 중장기적인 한·미 산업 및 기술 협력 등을 다 묶어서 ‘포지티브섬(positive-sum·양측 모두 이익)’으로 협상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정부는 양국의 최종 합의에 ‘자동차와 철강 등에 대한 품목별 관세의 철폐 또는 완화’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한국은 상호관세보다 국내 기업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는 품목관세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일본도 7차례에 걸친 고위급 협상을 통해 자동차에 대한 품목관세 인하를 요구했지만, 아직 미국을 설득하진 못한 상황이다.
특히 이날 산업부는 양국이 한국의 새 정부 출범한 뒤 한 달간 ‘선의(in good faith)’에 기반을 둔 협상을 이어가고 있는 점과 상호 입장 차이를 더 좁혀나갈 필요가 있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상호관세 유예를 연장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협의했다고 했다. 여 본부장은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나, 그간 양국이 쌓아온 견고한 협력 모멘텀을 유지하고, 미국 관세 조치에 대한 우호적 결과가 도출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국익에 기반한 협의를 이어가겠다”고 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2개 국가에 대한 상호관세율을 적시한 서한에 서명했다. 이 서한을 7일부터 발송해 다음 달 1일부터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한국이 12개국에 포함돼 있는지는 파악되지 않은 상태다. 이날 여 본부장은 “일단 8일 상호관세 유예 만료 이후 한국을 포함한 각국에 대한 새 상호관세율이 나오더라도 조금의 유예 기간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하며, 이번 주에도 계속 협상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귀국하는 비행기표도 끊어놓지 않았다고 한다. 관세 부과 재개와 관련한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미국의 일방적인 관세율 통보 상황을 피하고, 후속 협상의 동력을 유지하는 것이 여 본부장의 당면 과제다.
정부는 여 본부장을 비롯한 통상 분야와 함께 외교 측면에서도 전방위적 대응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여 본부장은 자신에 이어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방미하는 것에 대해 “상황이 계속 급진전되기 때문에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서 통상과 안보 쪽에서 힘을 합할 부분은 합하고, 각자 역할 분담할 부분은 분담해 ‘올코트 프레싱’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위 실장은 이날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에서 “협의 국면이 중요한 상황으로 들어가고 있어 제 차원에서 관여를 늘리기 위해 방미하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