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지구의 자전 속도가 빨라져 하루가 평소보다 아주 미세하게 짧아진다고 한다. 하루의 길이가 1.5ms(밀리초·1000분의 1초)씩 줄어 과학자들은 결국 2029년경 ‘음(陰)의 윤초(Leap Second)’를 도입할 가능성을 제기한다. 일상생활에서는 전혀 감지할 수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절대적이고 정확한 ‘시간’이란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원자시계가 제공하는 고정된 시간을 살아가지만, 고대 사회의 시간은 자연 현상과 밀접히 연결된 상대적인 개념이었다. 기원전 6세기 밀레토스의 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가 해시계(gnomon)를 발명했다고 전해진다. 이 해시계는 그림자의 길이와 방향으로 동지와 하지, 춘분과 추분을 알려주는 장치였다. 시간은 계절에 따라 길이가 달라지는 상대적인 개념이었다.
기원전 391년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여성의회(Ecclesiazousae)’에서는 프락사고에게 “네 그림자가 열 발(stoicheion)이 되었을 때 향수를 바르고 저녁 식사를 하러 가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시간은 자기 몸이 만들어낸 그림자의 길이로 결정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자연과 어우러진 ‘카이로스(Kairos)’, 즉 적절한 ‘때’라는 개념은 그리스인의 생활과 철학에 깊숙이 뿌리내렸다. 예수도 ‘때’를 말한다.
조선시대의 전통 시간관념에서도 하루를 12개의 ‘시진(時辰)’으로 나누어, 자시(子時)부터 해시(亥時)까지 각기 다른 동물의 이름을 붙였다. 낮과 밤은 다시 12등분 되었지만, 역시 해와 달의 움직임에 따라 그 길이가 늘었다 줄었다 했다.
산업혁명 이후 우리는 숫자로 고정된 시간을 살기 시작했고, 그 정확성은 우리의 삶을 통제하는 새로운 원칙이 되었다. 이번 여름 지구의 빠른 자전이 던진 미세한 혼란은, 우리가 잃어버린 자연과의 조화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