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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천국'서 태어나 전 세계 뒤흔든 털북숭이 요정…”에르메스보다 대세” 라부부에 미소 짓는 중국 [이도성의 본 차이나]

중앙일보

2025.07.06 08:16 2025.07.06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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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성 베이징 특파원
“요즘은 에르메스보다 라부부(LABUBU)죠.”

홍콩에 거주하는 박은영(34) 씨는 최근 중국 완구기업 팝마트(POP Mart)가 출시한 라부부 열쇠고리를 샀다. 손바닥만한 인형에 고리가 달려 주로 가방이나 핸드백에 거는 장식품이다. 홍콩과 마카오에 위치한 팝마트 매장을 돌아다녔지만 허탕만 쳤다. 다행히 온라인 ‘광클(미치도록 빨리 클린한다는 뜻)’에 성공해 라부부를 손에 넣었다.

그는 “평일 오전 ‘집에 사람이 없어 반송하겠다’는 배달기사 연락을 받고 읍소하면서 바로 찾아갔다”면서 “요즘은 ‘라부부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나뉠 정도”라며 라부부의 인기를 설명했다.
홍콩에 거주하는 박은영 씨가 온라인 공식 매장을 통해 구매한 라부부 열쇠고리. 사진 박은영

5일 중국 베이징 한 쇼핑몰에 위치한 팝마트 매장에 다양한 크기의 전시용 라부부 인형이 진열돼 있다. 이도성 특파원.
중국산 털북숭이 요정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라부부는 북유럽 신화에서 영감을 받은 숲의 요정이다. 홍콩 출신 아트토이 작가 룽카싱이 창작했다. 귀는 토끼처럼 길고 커다란 눈에 뾰족한 이빨 9개가 달렸다. 온몸에 덮인 털과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귀여움을 더했다. 요즘 말로 ‘못쁜'(못생겼지만 예쁜) 캐릭터다.

팝마트는 지난 2019년 라부부를 ‘블라인드 박스’ 형태로 만들었다. 제품을 뜯고 나서야 자신이 어떤 디자인을 샀는지 알 수 있는 방식이다. 최근 유명인사들이 소셜미디어에 라부부 인형 사진을 올리면서 세계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룹 블랙핑크의 리사, 미국 팝스타 리한나 등이 명품 가방에 라부부 인형을 달았다.

라부부는 현재 7cm 크기의 인형부터 1m 넘는 대형 피겨까지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진다. 300종이 넘는 시리즈 제품과 시즌 한정, 타 브랜드 협업 인형에 이른바 ‘시크릿 버전’까지 내놓으면서 구매 욕구를 자극한다. 지난달 베이징에서 열린 첫 ‘라부부 경매’에선 131cm짜리 한정판 민트색 라부부 피겨가 무려 108만 위안(약 2억 500만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5일 중국 베이징 한 대형쇼핑몰에 위치한 팝마트에서 고객들이 라부부 인형을 구경하며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이도성 특파원
5일 기자가 찾은 베이징 한 대형쇼핑몰에 입점한 팝마트 매장에도 100명 가까운 사람들이 몰렸다. 라부부 상품을 모아둔 진열대는 기념촬영 명소가 됐다. 각양각색의 라부부 인형 옆엔 ‘전시용 상품’이라 적힌 안내판이 걸렸다. 부모 손을 잡고 구경나온 아이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다른 쇼핑몰에 있는 매장도 마찬가지다. 재고가 전혀 없었다. 직원에 구매 방법을 문의하자 “온라인에서 제품별로 구매 대기를 걸 수 있다”고 답했다. 이어 “언제쯤 살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며 “최소 한 달 이상은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치원생 손녀들과 함께 매장을 찾은 한 50대 중국인 남성은 “아무리 돌아다녀도 라부부 인형을 구할 수가 없었다”며 한숨 지었다.

아예 단체채팅방을 운영하는 매장도 있었다. 온라인에서 예약하더라도 재입고 시기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예상 날짜와 수량 등이 정해지는 대로 고객들에게 따로 공지한다고 했다. 직원은 “선착순으로 구매에 성공하면 직접 매장에 와서 제품을 찾아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5일 중국 베이징 한 쇼핑몰에 위치한 팝마트 매장에서 운영하는 단체채팅방에 입장할 수 있는 QR코드가 설치돼 있다. 고객들은 이 채팅방을 통해 품절대란을 겪는 라부부 인형의 예상 입고 시기와 수량 등 정보를 받을 수 있다. 이도성 특파원.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다보니 가격이 치솟는다. 한 온라인 쇼핑몰 재판매업자는 ‘봄나들이 시리즈’ 라부부 인형을 1199위안(약 22만 8000원)에 팔고 있다. 공식 판매점 가격(159위안)의 7배가 넘는다. 한정판 라부부는 최대 30배까지 가격이 올랐다.

중국 최고급 명주에 빗대 '플라스틱 마오타이(塑料茅台)'로도 불린다. 베이징에 사는 30대 여성 왕징징도 최근 2차 거래로 라부부 인형 6개가 든 ‘블라인드 박스’ 1세트를 사들였다. 그는 “주변에 선물하기 위해 웃돈을 주고서 손에 넣었다”며 “원래 가격보다 3배 비쌌지만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크게 들지 않았다”고 밝혔다.

'봄나들이 시리즈' 라부부 인형은 공식 판매가보다 큰 웃돈이 붙은 채 온라인 쇼핑몰에서 팔리고 있다. 사진 팝마트 공식 계정 및 타오바오 캡처
중국뿐 아니다. 한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물량이 풀리자마자 동이 나는 일이 반복된다. 실물을 만져보기조차 어렵다. 지난달 서울 강남구 삼성동 팝마트 매장에서 ‘오픈런’을 했던 30대 남성 박 모 씨는 “내 앞에서 라부부를 구매한 사람에게 말을 걸었더니 눈길도 주지 않고 ‘절대 안 판다’면서 자리를 떴다”고 전했다.

빈틈을 노린 ‘가짜 라부부’도 판을 친다. 중국 세관은 밀수출되던 가짜 라부부 인형 2만여 개를 압수했고 저장성에서도 가짜 라부부 제조사를 적발했다. 중국 소셜미디어엔 라부부를 사재기하는 황뉴(黃牛·암거래업자)들과 일반 고객이 몸싸움을 벌이는 영상도 적지 않게 올라온다.

인기는 곧 돈이 된다. 팝마트의 올해 1분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0% 정도 늘었다. 해외매출은 4.8배 성장했다. 미국에서 9배, 유럽 시장은 6배로 커졌다. 해외 시장 마진율은 65% 수준으로 팝마트는 그야말로 돈방석에 앉았다. 홍콩증권거래소에 상장한 팝마트의 주가는 1년 만에 6배로 뛰었다.

5일 중국 베이징 한 대형쇼핑몰에 위치한 팝마트 매장에 라부부 캐릭터를 활용한 다양한 상품이 진열돼 있다. 이도성 특파원
라부부의 흥행은 중국 정부도 미소 짓게 했다. ‘짝퉁 천국’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지적재산(IP) 강국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린젠(林劍)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달 12일 정례브리핑서 “점점 더 많은 외국인이 중국을 이해하고 감정적 공감을 얻고 있다”며 라부부의 인기를 언급했다.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도라부부 열풍에 대해 “중국 수출 상품의 구조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지난해 출시한 게임 ‘우쿵(오공·悟空)’과 글로벌 흥행 5위에 오른 애니메이션 영화 ‘너자(나타·哪吒)’를 앞세우며 중국의 소프트파워를 전세계에 알렸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미국의 디즈니와 마블, 일본의 포켓몬과 헬로키티 등이 성장했을 때처럼 중국도 전환점에 서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산’이라는 이유만으로 소비자의 외면 받는 시대 역시 지나가고 있다. 영국 BBC는 “BYD나 딥시크와 마찬가지로 라부부 역시 그 누구도 중국 제품이라는 점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이도성([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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