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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의 이코노믹스] 근로시간 단축, 법제화 앞서 업무 효율성 제고가 우선

중앙일보

2025.07.06 08:18 2025.07.06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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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 걸리는 주 4.5일제 논의
이정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돌팔이 의사는 만병통치약을 팔지만 명의는 대증하약(對症下藥), 즉 정확한 진단에 따른 처방을 내린다. 근로시간 단축 논의 역시 일률적인 해법보다는 정밀한 진단과 분석이 필요하다.

법정근로시간을 단축해서 근로시간을 줄이는 정책은 지나치게 일률적이고 그만큼 비용이 많이 든다. 법정근로시간은 초과근로수당의 기준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2004년에 법정근로시간을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한 바 있다. 종전에 한 주의 근로시간이 44시간을 초과하면 지급하던 초과근로수당을 40시간부터 지급해야 하는 것으로 초과근로수당의 지급 시점을 앞당긴 정책이었다.

임금 삭감 없이 근로시간만 줄면
시급 오르며 인건비 16.7% 증가

업무 집중도 향상 등 효과 기대
고용 감소 불평등 확대 영향도

기업 여건 맞춘 생산성 제고로
근로시간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현재 논의되는 주 4.5일제가 법정근로시간을 40시간에서 36시간으로 단축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만큼 늘어날 초과근로수당의 부담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임금근로자 중 70% 이상이 36시간을 초과해서 일하고 있고, 이들의 소정 근로시간은 대부분 40시간 이상이다.

따라서 모든 근로자가 지금처럼 일을 계속하는데 법정근로시간이 36시간으로 줄어들면 임금근로자의 70%에게 4시간분의 초과근로수당을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 지급해야 하는 액수도 정확히 계산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초과근로수당은 통상임금의 150% 이상으로 법으로 정해져 있다. 4시간에 대해서 150% 초과 근로수당을 지급하면 40시간을 일하던 근로자의 임금 총액은 5% 상승한다.

김경진 기자
만약 주 40시간제에서 40시간을 일하고 받던 임금과 주 36시간제에서 36시간을 일하고 받는 임금이 같아야 하는 ‘임금 삭감 없는 근로시간 단축’을 하면 인건비 증가는 더 커진다. 정규 근로시간의 시급이 상승하므로 인건비 증가분이 5%가 아니라 16.7%로 커진다. 근로시간 단축이 사실상 임금 인상을 위한 도구가 된다.

5%이건 16.7%이건 인건비가 증가하면 기업은 다양한 비용 절감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예를 들어 근무시간을 엄격히 관리해 종전에 40시간에 하던 일을 36시간 이내에 끝내게 하고 4시간 연장근로 없이 금요일 오후에 퇴근하도록 할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하면 기업은 인건비를 추가 부담할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전기세 같은 부대비용까지 절약할 수 있으니 오히려 이득이 늘어날 수도 있다.

정책 효과 불확실성 큰 주 4.5일제
그렇지만 이런 식의 업무 효율화가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작업 속도가 기술적으로 제한되는 생산직에서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사무직에서도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동안 주 40시간제와 주 52시간 상한제를 겪으면서 많은 회사에서 조정할 수 있는 만큼 했다는 얘기가 있다. 결국 다시 한번 법정근로시간의 단축을 통해 비용 압박을 하게 되면 마른걸레를 쥐어짜는 식의 효율화가 나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고용에 대한 부정적 영향도 있을 수 있다. 프랑스의 경우 법정근로시간 단축 후에 근로자의 고용이 감소했다. 특히 최저임금 근로자의 고용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임금의 하방 조정 가능성이 없으면 비용 압박이 고용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초과근로수당은 150% 이상으로 법적으로 강제된다. 월 60시간까지는 125%를 지급하는 일본보다 높고, 노사합의에 의해 조정하는 독일에 비해 유연성이 떨어진다. 가뜩이나 우리나라의 기업은 고용 규모를 최소한으로 유지한다고 하는데 법정근로시간의 단축으로 최소한의 규모마저 더 축소될 수 있다.

게다가 법정근로시간을 36시간으로 낮추는 정책은 정책의 효과에 대한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대부분 선진국의 법정근로시간은 40시간이다. 40시간보다 짧은 나라는 호주와 벨기에(38시간), 프랑스(35시간) 정도밖에 없다. 우리가 36시간으로 내려가면 세계에서 법정근로시간이 두 번째로 짧은 나라가 되는 것이다. 법제도를 국가적 차원에서 실험하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

김경진 기자
주 4.5일제 논의가 기업의 자율적 도입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은 다행이다. 경기도의 주 4.5일제가 이런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경기도에서는 참여 기업에 근로자 1인당 월 최대 26만원, 컨설팅 및 시스템 구축에 최대 2000만원을 지원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재정 지원이 정당화되려면 정부 지원이 기업에 주는 사적인 이익 외에 사회적 이익, 즉 긍정적인 외부성이 명확해야 한다. 정부 지원만큼의 사회적 이득이 있을지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근로자 건강이 개선되고 건강보험 재정에 도움이 되는지, 일·생활 균형을 이뤄 출산율이 올라갈 것인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

노동시장 불평등 키울 수도
근로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기업, 주로 대기업만 정부 지원을 받을 것이고 따라서 오히려 노동시장의 불평등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세금을 사용하는 것인 만큼 두루뭉술 좋은 얘기만 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시장 실패는 정부의 개입을 정당화하지만 정부 실패 역시 항상 경계해야 한다. 정책은 불가역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욱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근로시간 단축의 긍정적 효과로 생산성 향상이 언급된다. 경기도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이 이직률을 낮출 수 있어 기업에 손해가 아니라 오히려 이익이라고 한다. 사실 많은 기업이 이미 여러 다양한 형태로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방향으로 유연하게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직원의 만족도가 높고 업무 집중도가 높아지면 회사에서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근로시간 단축은 모든 기업에 통하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그동안 주 4.5일제 혹은 주 4일제를 시범적으로 시행해 본 경험을 봐도 결과가 일관되지 않다. 직원들의 번아웃이 사라지고 매출이 증가했다는 좋은 결과도 있지만, 회사의 수익은 그대로이고 짧아진 근로시간 동안 노동 강도가 높아져 피로도가 악화했다는 결과도 있다. 좋은 결과가 더 많았다는 주장도 있지만 지금까지 시범사업은 모두 원하는 기업만 참여한 것이라 애초부터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기업이 많이 들어갔을 가능성을 고려하면 쉽게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사실 경영진조차 자기 회사에서 근로시간 단축의 효과가 어떨지 선험적으로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공장에서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있는 생산 라인의 배치를 찾기 위해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는 것처럼, 근로시간제도 역시 다양한 형태로 자체 실험을 해보면서 회사와 근로자 모두 각자 몸에 맞는 것을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근태관리의 시스템을 갖춘 중견기업 이상의 기업에서는 당연히 해볼 수 있는 시도다.

법정 상한, 실근로시간 단축 효과 작아
중요한 점은, 기업이 자율적으로 실험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주는 일이다. 규제 완화를 오남용하는 경우를 방지하면서 진취적인 시도는 독려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근로자에게 이익이 될 가능성이 있는 실험적 시도에 대해서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금지와 같은 조항을 탄력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근로시간을 우리가 따라잡아야 할 목표로 삼아왔다. 우리나라의 연간 근로시간 1859시간을 OECD 평균인 1717시간으로 142시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수량적 목표 설정은 정치적 구호로서 선명한 메시지를 준다는 점에서는 매력이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과 방법이 없으면 공염불일 뿐이다.

실제로 근로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우리보다 근로시간이 짧은 나라들의 노동시장 제도를 살펴봐야 한다. 전교 1등을 따라잡기 위해 전교 1등의 성적을 다음번 시험의 목표로 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짜로 1등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1등의 공부 방법을 파악하고 실천해야 한다.

성재민·김기선·정진호의 2024년 연구보고서(‘근로시간 통계 국제비교를 통해 본 정책 방향’)에 따르면, 49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을 하는 근로자 비중은 우리나라와 유럽연합(EU) 15개국이 비슷하다고 한다. 이 말은 장시간 노동을 억제하는 방식인 법정근로시간 단축이나 주 52시간제 같은 근로시간 법정 상한제가 실근로시간의 단축에 효과적인 방법이 아님을 의미한다.

근로시간 단축, 일률적 적용은 무리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평균 근로시간이 긴 것은 우리의 일 하는 방식이 유럽에 비해 너무 일률적이고 경직적이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유럽의 경우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거나 야간이나 주말에 일하는 비중이 우리보다 훨씬 높다. 그럼에도 평균 근로시간이 짧다는 것은 일할 때 효율적으로 집중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는 일이 없어도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일이 몰리면 야근이 불가피한 구조다.

근로시간을 단축해서 생산성이 올라가는 것이라기보다는 생산성이 높은 방식으로 일해야 근로시간이 짧아지는 것이다.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쉴 수 있는 제도의 유연성을 확보해야 자연스럽게 근로시간이 단축될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다.

마지막으로 중소기업이나 지방의 영세업체에 근로시간 단축은 비현실적인 요구가 될 수 있다. 근로시간을 단축하려면 기존의 근로시간을 여러 명의 직원에 분산시키거나 자동화나 기계화를 통해 인력을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구인난에 처해 있는 이 기업들에서 이런 식의 대응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이 모든 기업에서 실현 가능하지 않고 효과도 일률적이지 않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정치적 구호는 단순할수록 매력적이지만 정책은 정반대로 가야 성공한다. 대증하약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이정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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