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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석의 과학하는 마음] 걸어서 측정한 지구의 둘레

중앙일보

2025.07.06 08:22 2025.07.06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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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석 케임브리지대 교수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현대사회에서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들이 항상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며, 누가 어떻게 해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아냈는가 하는 것은 과학사에서 다루는 복잡하고 재미있는 주제이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고대 그리스의 학자들은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에 그것을 이미 알아차렸으며, 기원전 3세기에 지구의 둘레가 얼마나 된다는 것을 측정하기까지 했다. 우주여행은 물론 세계 일주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시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것을 알아냈을까?

지구의 모양을 알았던 고대인
크기 측정한 에라토스테네스
직접 관측 못해도 측정 가능해
지식의 궁극적 근본은 인간

에라토스 테네스.
지구의 둘레를 처음으로 측정해냈던 사람은 현재 리비아의 일부가 된 지방에서 출생했던 에라토스테네스였다. 그 당시 알렉산더 대왕이 제국을 건립한 후에 북아프리카의 많은 부분은 그리스인들이 건너와서 통치하고 있었다. 에라토스테네스는 아테네로 유학하여 저명한 학자들 밑에서 철학을 공부한 후 이집트의 파라오 프톨레마이오스 3세에게 초빙받아 기원전 245년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부임했고 5년 후 관장이 되었다. 그 도서관은 당시에 세계 최고의 학술 연구소로 명성을 떨쳤던 곳이다. 나중에 무지한 폭도들의 습격을 받아 파괴되고 책도 다 손실되었는데 이집트 정부와 유네스코가 주관한 재건 사업을 통해 2002년에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지리학의 아버지 에라토스테네스
인공지능(AI) 이미지 생성기 ‘달리(DALL·E)’를 이용해 그린 에라토스테네스의 지구 둘레 측정 이미지.
에라토스테네스는 수학에서 문학까지 여러 분야에 조예가 깊은 학자였는데, 특히 지리에 관심이 깊었고 지리학(geography)이라는 단어 자체를 그가 처음으로 지어내었다고 한다. 지구 전체의 크기를 알아낸 것도 이집트 국내 지리에 대한 지식에 기반한 것이었다.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 북부 지방 지중해 해안에 위치한 항구도시였고, 거기서 한참 남쪽으로 가면 나일 강 상류에 위치한 시에네라는 곳이 있었다. 시에네의 현 지명은 아스완이며, 지금은 유명한 아스완댐의 소재지이다. 에라토스테네스는 시에네 지방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그곳에서는 하짓날 정오가 되면 모든 건물이나 사람의 그림자가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태양이 정확히 머리 위 수직으로 올라가는 방향에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깊은 우물 속까지도 햇빛이 들었다. 그런데 같은 시간에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좀 짤막하기는 하지만 모든 물체에 그림자가 있었다. 거기는 하짓날 정오에도 햇빛이 약간 경사지게 들었다는 말이다. (현대적으로 이해한다면 시에네는 북회귀선에 위치해 있으므로 하지에는 햇빛이 지평과 90도 각도로 내려온다.)

이렇게 같은 시각에 다른 지역에 내려오는 태양 광선의 방향이 다르다는 것은 지역에 따라 땅의 표면이 다른 방향으로 있다는 말이 된다. 에라토스테네스는 그 각도의 차이가 얼마나 되는가를 재 보면 지구의 크기를 측정할 수 있다는 기발한 착상을 하였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여러 물건이 드리우는 그림자의 길이를 재 보니 태양 빛이 가지는 경사는 7.2도였고, 시에네에서는 0도, 즉 경사가 없었다. 지구 한 바퀴를 다 돌면 360도니까, 360을 7.2로 나누면 50, 즉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에네까지는 지구 둘레의 50분의 1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면 그 거리를 재서 50을 곱하기만 하면 지구의 둘레가 나온다.

그런데 알렉산드리아와 시에네 사이의 거리는 어떻게 알아냈을까? 그때는 인공위성을 사용한 측정법은 고사하고, 광학 기구를 이용한 근대적 측량기술도 없었다. 놀라운 것은, 그 먼 거리를 인간의 걸음으로 측정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그런 방법으로 거리를 재는 전문가들이 있었고, 그들을 칭하는 ‘베마티스트(bematist)’라는 단어까지 있었다. 사막도 있고 언덕도 있는 지형을 직선으로 가면서 항상 같은 보폭으로 걸어서 몇 보나 되었는지를 세는 것인데, 쉬운 일은 아니었으리라.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의 둘레가 25만 2000 스타디아(stadia)라고 기록했다. 스타디아는 그 당시 널리 사용되던 길이의 단위인데, 그것이 정확히 몇 m나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특히 이집트 스타디아와 그리스 스타디아가 약간 다른 단위였는데 에라토스테네스가 그중 어떤 것을 사용했었는지 불명확하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추정에 의하면 에라토스테네스의 측정 결과는 현대적으로 알려진 4만㎞ 남짓한 수치와 1%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정말로 놀라운 성과였다.

그럴듯한 가정과 논리적 사고력
에라토스테네스의 측정은 물론 많은 이론적 가정들에 기반한 추론에 의지한 것이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우선 가정하고 들어간 것이고, 그 모양은 찌그러지지 않고 완벽한 구형이라 가정했다. 또한 태양이 지구의 크기에 비해 매우 멀어서 태양 빛이 지구 전체에 대체로 평행하게 입사한다는 가정도 들어갔다. 빛이 직선으로 움직인다는 것도 생각해보면 가정이다. 모두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일단 믿을만한 가정들이었다. 그리하여 에라토스테네스는 자기가 사는 지구의 조그마한 구석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지구 전체의 크기를 알아냈다. 지구 전체의 모양을 한눈에 볼 수는 없었지만, 여러 가지 그럴듯한 가정들과 논리적 사고력을 발휘하여 사람의 한 걸음 한 걸음과 지구 전체의 크기를 연결시켜 준 것이다. 우리가 이제는 우주 공간에 나가서 지구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지만, 크게 볼 때 인간은 아직도 우주의 한구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온갖 기발한 고안을 해내어 우리가 볼 수 없고, 가볼 수 없는 부분의 자연을 탐색한다. 에라토스테네스가 이룩했던 업적과 현대 과학의 첨단 연구는 그렇게 근본적으로 통하는 작업이다.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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