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기업형 수퍼마켓을 표방하며 출범한 홈플러스는 대형할인점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유통방식을 앞세워 지난 15년간 국내 유통업 성장을 주도해왔다. 하지만 지난 3월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면서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조사위원의 실사 결과 청산가치가 계속기업가치 보다 높게 평가됨에 따라 법원에서 회생절차를 폐지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실사 결과 청산가치 더 높았지만
법원, 파장 고려 인수·합병 권고
국가경제 파장 최소화 방안 찾길
그러나 법원은 회생절차를 폐지하는 대신 관리인이 신청한 ‘인가 전 인수합병(M&A)’을 허가했다. 이에 따라 향후 두 달간 진행될 조건부 투자계약 및 공개입찰 결과에 따라 홈플러스의 존폐가 결정될 전망이다. 국내 대형마트 2위 업체인 홈플러스를 누가 인수하느냐에 따라 국내 유통업계가 재편될 수 있다. 이 때문에 국내 유통업체들뿐 아니라 국내외 다양한 기업들이 홈플러스 매각 진행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법원이 지정한 조사위원인 삼일회계법인은 장기간에 걸친 실사를 마치고 지난 6월 중순 법원에 조사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향후 10년간 매년 2000억원 이상의 현금을 창출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2조5000억원의 계속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주요 거점지역에 대규모 점포를 보유하고 있는 대형마트 특성상 부동산 가치가 높아 청산가치가 계속기업가치보다 무려 1조2000억원이나 더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이에 따라 경제논리로는 청산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나 조사위원은 홈플러스를 청산할 경우 예상되는 사회적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관리인에게 ‘회생인가 전 M&A’를 신청할 것을 권고했고, 법원은 관리인의 신청을 허가했다. 법원이 청산가치가 더 높다는 조사보고서에도 청산이 아닌 회생인가 전 M&A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경제논리 이외에 다른 많은 고민이 숨어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홈플러스가 가진 막대한 사회적 가치를 간과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홈플러스는 단일기업 기준 고용 규모가 국내 10위권으로 직접 고용인원만 1만9536명이다. 이는 대기업인 포스코나 대한항공과 비교해도 훨씬 더 많은 규모다. 여기에 홈플러스 매장에 입점한 중소 상인 및 납품 협력사를 통한 간접 고용 인력까지 포함하면 약 10만 명의 생계가 홈플러스와 연관되어 있다. 홈플러스의 회생 여부가 국가적인 이슈인 고용안정과 민생경제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형마트는 대표적인 노동집약산업이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일자리 창출 효과를 나타내는 취업유발계수와 고용계수지표가 제조업이나 건설업보다 현저히 높다. 홈플러스가 속한 도소매업과 상품 중개서비스업의 부가가치율과 부가가치유발계수도 제조업보다 월등히 높다. 이는 홈플러스가 단순히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 전반에 주는 파급 효과가 상당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다른 산업들과는 달리 유통업이 제공하는 일자리 중 많은 부분이 중장년 여성들로 채워지고 있어서 한국사회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는 분야의 일자리다.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할 때 홈플러스 M&A는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대표적 유통기업의 회생 사례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대형 수퍼마켓체인 다이에이(Daiei)가 재무적 위기를 맞자 2004년 당시 일본 정부는 공적자금을 투입하며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그 과정에서 안정을 되찾은 다이에이는 이후 거대 유통기업 에이온(AEON)에 인수되면서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그 결과 대형 유통기업의 도산이 불러올 수 있는 여러 가지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민생경제 안정에도 성공할 수 있었다.
한국 정부도 이런 사례를 참고해 홈플러스의 인가 전 M&A에 대해 거시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홈플러스 M&A는 단순히 한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유통산업의 미래가 걸려 있고, 고용안정에 큰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 말하자면 민생경제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주는 사안이란 얘기다. 다양한 정책적인 고려를 통해 국가 경제와 사회적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