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일 대전에서 타운홀 미팅을 개최했다. 지난달 말 가장 먼저 광주·전남을 찾은 데 이어 두 번째다. 역대 정부에서도 대통령이 시민과 직접 만나는 행사를 열곤 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시민들과 접점을 만드는 형식은 파격적이다. 과거에는 참석 시민을 사전에 선정하고 질문도 조율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는 현장에서 선착순으로 300여 명을 입장시킨다. 대전 타운홀 미팅에서 발언 기회를 얻은 한 시민은 “충주에서 연차를 쓰고 왔다”고 소개했다.
사전 조율도 없이 대화의 장을 열 수 있게 된 데엔 이 대통령의 자신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에 이어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냈고 대선 후보도 두 차례 한 만큼 웬만한 현안과 쟁점은 꿰뚫고 있다고 봐야 한다. 대선 동안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일상한 만큼 이 대통령 스스로도 시민들과 대본 없이 실시간 대화를 하더라도 무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타운홀 미팅에선 비교적 솔직한 대화가 오가는 모습이었다. 소상공인 지원 방안과 관련해서 한 자영업자가 “채무자 빚을 탕감한다면 '성실 상환자'에 대해서도 핀셋 정책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성실 상환자' 관련 대책도 추경에 많이 들어있다”면서 배석한 주무부처 사무처장에게 관련 대책을 설명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빚진 소상공인들을 다 모아 집단 토론을 해보라. 필요한 게 뭔지 그 사람들 입장에서 발굴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시했다.
사전 조율이 없다 보니 민원성 발언이 많이 나온 것은 예상된 문제점이었다. 공무직 근로자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발언이 나오자 이 대통령은 “이런 개인적 이해관계에 관한 얘기를 하면, 대통령이 바쁜 시간을 내 이렇게 다닐 가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참석자가 비정규직 여성의 일자리가 불안하다는 점을 강조하자 “개인적 사안을 말하면 민원 상담 창구가 된다”고 하기도 했다.
이 같은 미비점은 보완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두 차례 타운홀 미팅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정작 국가 균형 발전에 대한 방안이 제대로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도권 집중에 따라 지방은 고사 위기에 몰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광주·전남에서 타운홀 미팅을 열었지만, 지역 발전의 새로운 비전은 제시되지 못했다.
각본 없이 시민과 즉석 문답 신선 구체안 묻는데 단체장 답변 미흡 과제 미리 조율해 비전 보여줘야
이 대통령은 지역 현안인 광주 군 공항 무안 이전 사업을 대통령실이 직접 챙기는 시스템을 만들도록 지시하고 지원 방침을 밝혔다. 동시에 광주시장과 전남도지사에게 지역을 살릴 구체적인 방안을 질문했다. 두 지자체장이 국가산업단지 등에 대한 지원 등을 요청하자 이 대통령은 “산단 부지를 개발만 하면 분양이 돼서 기업들이 들어올 거다는 건데 진짜 그럴까요?”라고 되물었다. “광주가 잘하고 있는데 정부가 지켜보면 됩니까?”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계속 구체적인 지역균형 발전 방안과 정부가 무엇을 해줘야 할지를 질문하고, 지자체장들은 자신들이 설명한 산단 지원 정도로 답변하는 답답한 문답이 이어졌다.
대통령과 지자체장들이 낙후 지역 발전을 위해 모였지만 특별한 성과가 없이 마무리되자 부작용이 터져 나왔다. 행사 생중계에 달린 댓글에는 광주시장과 전남도지사의 무능을 질타하는 내용이 줄을 이었다. 대통령이 뭔가 해주겠다고 하는데도 제대로 요구조차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반면 광주시청 직원 게시판에는 익명으로 “부산에는 해수부니, HMM이니 준다고 하면서 우리한테는 자세히 말 안 한다고 닦달하느냐”는 글이 달렸다. 그러자 “역대 어떤 대통령이 말도 안 하는 걸 알아서 해줬느냐”는 의견이 달리는 등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낙후 지방 살리기는 타운홀 미팅에서 대통령과 지자체장이 일회성으로 의견을 주고받는다고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생중계되는 토론 대신 이 대통령은 이 문제를 국책 우선순위에 놓고 영호남과 충청, 강원, 제주 등 지역별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창조적인 해법이 무엇인지를 국가 차원에서 지자체와 함께 발굴할 필요가 있다. 특히 영호남의 경우 특정 정당의 공천이 곧 당선이어서 지방 정치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그런 만큼 대통령실과 부처, 별도 위원회 차원에서 대책을 숙의하는 게 그나마 해법을 찾아낼 가능성이 클 수 있다. 타운홀 미팅이 계속된다면 정부와 지자체 간 공통 과제를 미리 논의하고 비전의 방향이라도 주민들에게 제시할 수 있어야 타운홀 미팅의 효과를 체감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