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만남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트럼프 집권 1기 때 외교안보 책사 역할을 했던 존 볼턴 전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4일(현지시간)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새로 취임한 이 대통령은 할 일이 많고 미국 입장에서도 가능한 한 빨리 두 정상 간 회담을 진행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우선 트럼프발 무역분쟁을 해결하고 정상적인 교역 관계로 돌아가야 한다는 경제적 관점에서 한ㆍ미 정상 회담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조 바이든 행정부 때 진전된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 대응 방안을 논의해야 하는데, 미 정부는 이 대통령 입장을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지정학적 측면에서도 속히 두 정상의 회담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반대한다”며 “미국이 동맹국들과 동시에 벌이는 무역전쟁은 국제 교역에서 ‘진정한 악당’인 중국에 맞서 싸우는 동맹의 연대를 어렵게 만든다. 정말 안타까운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당초 8일로 잡혔던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방한의 갑작스런 취소와 관련해 “한국, 일본과 교착상태에 빠진 관세 협상이 원인일 수 있다”며 “루비오 장관의 방한이 시급히 이뤄져 한ㆍ미 정상 회담 시기를 정하는 완벽한 타이밍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최근 미 일부 언론에서 보도된 주한미군 감축론에 대해선 “분명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주한미군 역할을 역내 다양한 위협에 대비해 전략적 유연성을 확대해야 한다는 일각의 논의에 대해선 “중국의 위협은 역내 모든 자유 국가에 대한 위협이므로 (주한미군이) 더욱 광범위한 유연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한국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이 대통령이 중국의 전승절 80주년 기념식 참석을 초청받은 것과 관련해서는 “중국이 한국과 일본의 간극을 더 넓히려고 기획한 행사라면 이 대통령의 참석은 실수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란 핵시설에 대한 미군 폭격의 실제 효과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서는 “공격은 매우 잘 준비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핵프로그램이 완전히 파괴된 것은 아니어서 추가 작전이 필요하며 향후 몇 주 내 후속 공격이 필요할 수 있다”고 했다.
과거 북한ㆍ이라크ㆍ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선제 타격론을 불사하는 등 초강경 네오콘(신보수주의자)으로 꼽히는 볼턴 전 보좌관은 트럼프 1기 때인 2018년 4월 국가안보보좌관에 기용됐지만 트럼프와의 불화 끝에 다음해 9월 경질된 뒤로는 트럼프 대통령을 계속 비판해 왔다.
━
“현시점서 주한미군 감축은 실수 될 것”
Q : 미 행정부에서 주한미군 감축이 실제 논의되고 있나.
A : “구체적 사실은 알지 못한다. 다만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부터 비무장지대(DMZ) 미군 병력을 재배치해 부산 등 후방으로 이동시키는 방안이 논의돼 왔다. 이 계획이 재검토되는지 모르겠지만, 현시점에서 한반도에서 미군을 감축하는 것은 실수가 될 것이다. 그런 계획을 검토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Q :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에서 ‘주한미군 4500명의 인도태평양 역내 재배치’ 논의가 보도됐다.
A : “미 국방부는 비상사태에 대비해 본래 많은 계획들을 갖고 있다. 4500명 재배치론은 역내 작전 변경 구상과 관련된 것일 수 있는데, 그리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진짜 핵심은 한국의 지난 정부 시절 얘기가 나온 한반도 내 전술핵무기 재배치를 새 행정부가 결정할지 여부다.”
볼턴 전 보좌관은 그간 “한반도에 전술핵무기가 배치된다면 북한에 의한 분쟁 가능성이 훨씬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을 꾸준히 펴 왔다. 전술핵 재배치는 북핵 억지 능력의 한반도 내 실존을 의미하며 이는 북한의 무력 분쟁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줄인다는 논리다.
━
“미군 전략적 유연성, 韓도 고려해야”
Q :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확대해야 한다는 논의는 어떻게 보나.
A : “동중국해나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위협은 역내 모든 자유 국가에 대한 위협이다. 따라서 아시아 지역에서 주한미군이 더 폭넓은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한국도 안보 측면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Q :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만남이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다.
A : “이 대통령은 가능한 한 빨리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야 한다. 미국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논의 주제는 명확하다. 미국과 한국 양측이 협정을 통해 관세를 줄이고 정상적인 무역 관계로 돌아가길 바란다. 이러한 경제적 관점뿐 아니라 지정학적 관점에서도 양국 정상 회담이 필요하다. 당연히 북한 핵프로그램 대응 방안을 논의해야 하는데 미 정부는 이 대통령의 정확한 생각을 알지 못한다.”
━
“中 전승절 정치 목적이라면 불참해야”
Q : 이재명 정부는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를 앞세운다.
A : “핵심은 대(對)중국 관계다. 인도태평양 지역 전체에 걸쳐 위협을 가하고 대만에 대한 잠재적 공격 가능성까지 있는 중국을 한국 역시 분명한 위협으로 인식해야 한다.”
Q : 중국은 이 대통령을 전승절 80주년 기념식 행사에 초청했는데.
A : “중국이 항일 전쟁 승리를 기념하면서 한국과 일본의 간극을 넓히려는 의도라면 이 대통령의 참석은 실수일 것이다. 일본을 겨냥한 정치적 선전 행사가 목적이라면 이 대통령의 참석은 해가 될 것이다.”
중국은 9월 3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전승절 행사를 성대하게 열겠다는 계획이다. 사회주의권 국가는 물론 서방 국가 정상들도 초청 리스트에 올린다는 구상인데, 트럼프 대통령 초청 방침을 굳혔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한국 정부는 10월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참석 여부와 대미 관계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겠다는 입장이다.
━
“복지, 北·中 위협 방어책 안돼”
Q : 한ㆍ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트럼프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정상회의에서 관철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5% 지출’ 공약을 요구할 거란 예상이 나오는데, 이 대통령에게 조언한다면.
A : “일단 미국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때 수준인 GDP 대비 5% 정도로 국방비 지출을 크게 늘려야 한다.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사회복지 프로그램이 북한 공격이나 중국 위협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직면한 위협은 중국ㆍ러시아 축의 강화로 전 세계 평화ㆍ안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방 예산 증가가 필요한 건 그래서다. 이 대통령도 그 필요성을 진심으로 믿고 있기를 바란다.”
Q : 북ㆍ미관계 진전을 원한다는 트럼프 대통령 메시지에도 북한 반응이 없다.
A : “트럼프는 집권 1기 때 북한 지도자 김정은과 만난 뒤 사랑에 빠졌다고 말했지만 김정은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김정은이 적절한 시기에 회담을 제안한다면 트럼프는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바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회담을 빨리 성사시켜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미국은 이 대통령이 정확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존 볼턴 예일대 로스쿨 졸업 이후 레이건 행정부부터 트럼프 행정부까지 공화당 행정부에서 꾸준히 중용됐던 초강경 네오콘 인사. 트럼프 1기 때 허버트 맥매스터 후임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발탁된 뒤 트럼프 대통령 외교 노선과 계속 충돌하면서 경질됐다. 미국 민주당과 진보 진영에서는 ‘전쟁광(War Hawk)’ 또는 ‘개입주의의 화신’이라는 비판을 받지만, 미국의 강력한 리더십과 견고한 동맹 체제를 신봉하는 현실주의적 군사 전략가라는 평가도 공존한다. 최근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습에 “늦었지만 옳은 결정이었다”고 환영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