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회사와의 올해 임금협상에서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파업 수순에 들어갔다. 지난 5월부터 진행된 교섭이 10차례 이상 이어졌지만, 진전을 보지 못했고, 결국 조합원 과반의 찬성으로 파업이 가결됐다. 노조는 "조합원 753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파업 찬반투표에서 5050명(투표율 66.99%)이 참여해 64%(4828명)가 찬성했다"고 7일 밝혔다. 앞서 노조는 합법적인 쟁의권 확보를 위해 지난달 27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을 신청했고, 중노위가 조정 중지를 결정하면 즉시 합법적 파업이 가능해진다. 조정 중지 여부는 이날 오후 결정될 예정이다.
노조는 이달 중순까지 협상 타결이 어려울 경우, 다음달 여름 휴가 후 쟁의대책위원회를 열어 파업 일정과 수위를 확정할 방침이다. 백호선 노조 지부장은 "사측이 진정성 있는 제시안을 내놓지 않는다면 조합원들의 결의를 바탕으로 중대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 임금협상에서 노조는 기본급 14만1300원 인상(호봉승급분 제외), 정년 연장(현행 만 60세→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에 맞춰 단계적 연장), 성과급 산정 기준 개선, 근속수당 연 1만원 인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정년을 이유로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는 차별적 제도라며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현재 HD현대중공업은 사무직이나 생산직 등 직무에 따라 만 58세부터 적게는 5%, 많게는 40%의 줄인 임금을 주고 있다. 이밖에 신규 채용 확대, 조합활동 보장, 중대재해 공동 대응 체계 마련 등 '조선업종노조연대'를 통한 공동 요구안도 포함됐다. 해당 연대에는 HD현대중공업을 비롯해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8개 조선업체 노조가 참여 중이다.
회사 측은 아직 뚜렷한 협상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10여 차례 노조와 협상 자리를 가졌지만, 그간 노조 요구안 설명회와 회사 경영환경 설명회를 하는데 상당한 기간이 소요됐다"며 "그렇다 보니 노조 요구안에 대한 회사 입장을 현재까지 내놓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노조 내부에서는 "조선업 호황이고, 사상 최대 실적을 내고 있지만, 회사 측이 협상에서 시간끌기 전략을 한다"는 불만이 나오는 분위기다.
HD현대중공업 노조는 조선업계에서 강성으로 통한다. 지난해 임단협 당시 24차례 부분파업을 벌이며 기본급 13만원 인상에 합의했다. 당시 울산조선소 내 도로를 둘러싼 점거 시도 과정에서 노사 간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고, 일부 조합원은 골절 등 부상을 입기도 했다. 이번 파업 수순에 지역사회도 긴장하고 있다.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은 최근 HD현대중공업을 방문해 노진율 대표이사와 백 지부장 등 노사 양측을 만나 원만한 합의를 요청했다. 김 구청장은 "HD현대중공업의 파업은 울산은 물론 우리나라 조선산업과 지역 상권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노사가 상생의 자세로 협상에 임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