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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벽’은 없다 ‘나의 벽’이 있을 뿐

중앙일보

2025.07.07 08:01 2025.07.07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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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벳(가운데)은 육상 여자 5000m 사상 최초로 14분의 장벽을 넘었다. 하인스(왼쪽)는 100m의 10초 벽, 배니스터(오른쪽)는 1마일의 4분 벽을 가장 먼저 깼다. [AFP·AP=연합뉴스, 중앙포토]
지난 6일 미국 오리건주 유진에서 열린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다이아몬드리그 여자 5000m에서 비어트리스 체벳(25·케냐)은 13분58초06으로 우승했다. 그는 5000m를 14분 안에 뛴 최초의 여성이 됐다. 100m 랩타임이 16.8초 이내라야 가능한 기록이다. 체벳은 3000m를 8분22초96으로 통과해 ‘마의 14분 벽’을 넘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마지막 200m 구간에서 스퍼트해 2초나 일찍 들어왔다. 그는 지난해 파리올림픽에서 여자 1만m 세계신기록(28분54초14)을 세웠다.

이날 같은 대회에서 케냐의 페이스 키프예곤(31)도 여자 1500m 세계신기록(3분48초68)을 작성했다. 그는 앞서 지난달 27일 또 다른 ‘마의 벽’을 깨기 위한 도전에 나섰다. 과거에는 남자도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1마일(1609m) 4분 벽’ 깨기였다.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가 준비한 도전 이벤트에서 키프예곤은 남성 페이스메이커 13명과 함께 최첨단 기술이 적용된 수트 및 러닝화 등을 착용하고 도전에 나섰다. 기록은 4분06초42. 벽을 넘지는 못했지만 세계신기록(비공식)이었다.

육상 등 기록경기에서 ‘마의 벽’은 선수들이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심리적 장벽이자 기록의 한계를 가리킨다. 시작은 ‘남자 1마일 4분 벽’이었다. 로저 배니스터(영국)가 1954년 옥스퍼드대 트랙 경기장에서 1마일을 3분59초4에 달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마의 4분 벽’을 깼다. “그 정도로 달리면 선수 심장이 파열될 것”이라던 생리학자들 장담이 무색해졌다. 배니스터가 성공한 지 한 달 만에 10명이 1마일을 4분 안에 달렸다. 현 세계기록은 히캄 엘 게루즈(모로코)의 3분43초13이다.

윤영길 한국체대 스포츠심리학과 교수는 ‘마의 벽’을 “한 집단 내에서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느끼는 영역’ ‘이건 절대 못 넘어간다’고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학습된 무력감, 집단 무의식의 반영”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 벽을 넘으면 그 성공의 경험이 지렛대로 작용한다. 윤 교수는 “벽으로 인식했다가도 에너지가 모이면 어느 순간 벽을 넘어서게 된다. 그러나 다시 벽을 마주하는 집단 무의식이 반복된다”며 “절대적인 벽은 존재한다. 인간은 새나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무한히 깰 수는 없다. 흔히 말하는 마의 벽은 절대적인 벽과 달성 가능한 벽 사이의 어느 지점”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육상에는 한때 남자 100m에 ‘벽’이 존재했다. 고 서말구가 1979년 멕시코시티 유니버시아드에서 세운 한국기록(10초34)은 31년간 난공불락이었다. 하지만 김국영이 2010년 10초31로 그 ‘벽’을 넘어섰고, 그 후 기록 단축을 거듭한 끝에 2017년 현재의 한국기록(10초07)까지 다다랐다. 심지어 지난해에는 고등부 최고 기록(10초30·조엘진)마저 서말구의 기록보다 빨랐다. 지난 6일 전국육상대회에서 김시온(26)이 남자 100m를 10초20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이는 김국영, 김태효(10초17), 이준혁(10초18), 주지명(10초19)에 이은 역대 5위 기록이다.

한국 남자 육상이 넘어야 할 다음 과제는 ‘100m 10초 벽’ 넘기다. 장재근(63) 전 진천선수촌장은 “한국 선수들의 (최근) 능력을 볼 때 (100m 9초대 진입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일본·중국이 하는데 우리가 못 할 이유가 없다”며 “다만 좋은 코치, 좋은 프로그램,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선수 자신의 열정과 열망이 가장 우선”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초로 ‘100m 10초 벽’을 돌파한 선수는 짐 하인스(미국)로 1968년에 9초95를 기록했다. 현 세계기록은 우사인 볼트(39·자메이카)가 2009년 세운 9초58이다.





김영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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