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에 취약한 사람에게 쥐약 같은 계절이 왔다. 물론 거기에는 내가 포함된다. 이름이 암시하듯 추위를 비교적 잘 견디고 더위에는 맥을 못 추린다. 7월 즈음이 되면 체력이 절반 정도로 깎여나가기 때문에 자신을 잘 돌봐야 한다. 집 안에 있을 때는 커튼을 쳐두고 나갈 때는 신발장 구석에 놓아둔 양산을 꺼낸다. 햇빛을 피하는 것이 관건이다. 여름의 햇빛은 잔인하고, 사람을 탈진시키거나 건강을 위협한다.
비단 여름이 아니더라도 한낮의 햇빛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 같은 독자에게 『빛과 실』(2025)이 말한다. “햇빛이 무엇인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이 정원을 갖게 되기 전까지는.” 한강 작가는 자신의 작은 정원을 돌보기 위해 여덟 개의 탁상용 거울을 산 이야기를 한다. 빛이 잘 들지 않는 남쪽의 정원에 빛을 쐬어주기 위해, 어떤 날엔 글을 쓰다가도 15분마다 일어나 거울의 각도를 조절하고 사흘마다 거울의 위치를 옮긴다. 거울에 반사된 빛을 받은 잎들이 투명한 연둣빛으로 빛날 때면 “식물과 공생해온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것이리라 짐작되는, 거의 근원적이라고 느껴지는 기쁨의 감각”을 느낀다. 빛을 먹고 자라는 나무들과 사는 일이 자신의 형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노라고 작가는 고백한다.
얼마 전 영월에 혼자 여행을 갔다가 이 구절들을 떠올렸다. 초록의 파도 소리가 들릴 것처럼 산과 숲이 새파랬다. 햇빛 아래서 산을 걷는 일은 고역이었지만, 무성한 나무들이 햇빛을 받아 빛나는 모습은 이상할 정도로 기뻤다. 남은 계절 내내 여전히 해를 피해 다니면서도 슬쩍 그림자 너머를 엿볼 것이다. 빛을 흠뻑 머금고 자라나는 식물들을 훔쳐보며. 하루하루 다른 모양이 되고 꽃을 피우고 향을 만들고 다른 생명체의 쉴 자리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누구도 탈진하지 않고 식물들이 활짝 기지개를 켜는 여름이 되기를, 그래서 조금 너그러운 여름이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