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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오리는 남고 사람은 떠나는 금만평야

중앙일보

2025.07.07 08:18 2025.07.07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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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식 수필가
‘한반도의 역사는 서해안에 있다’는 말에 서해안의 이곳저곳을 찾는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두 시간쯤 내려가면 금강·만경강·동진강이 차례로 나오는데 이 세 줄기의 강 사이에는 금만평야가 펼쳐진다. 예로부터 금만평야는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이 보이는 땅이라고 했다. 해질녘이면 지평선 너머에 윤슬이 반짝이는 수평선도 보인다.

평야가 너르다 보니 저수지와 방죽이 많은 건 자명한 이치다. 이 저수지들 중에는 흔적만 남은 벽골제와 지금도 큰물을 담고 있는 능제가 있다. 세계 어디를 가도 호수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능제는 산 대신 평야가 둘러서 있다.

넉넉히 물 대주던 능제 저수지
시베리아 철새, 텃새 되어 남고
텅 빈 농촌에 외국인 청년들만

김지윤 기자
이곳 사람들은 금만 평야에 넉넉한 물을 대주는 능제를 ‘능지방죽’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또 능지방죽에는 구불구불한 주변 귀퉁이가 아흔아홉 개나 된다며 무언가 신령한 기운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선지 능제의 한 귀퉁이에서 최고 학승인 탄허가, 근처 마을에선 신통 묘술을 행한 진묵대사가 태어났다. 극진 가라테의 최배달도 조금 떨어진 마을에 태를 묻었다. 그 동네 사람들은 능지방죽이라는 말에서 뭔가 친근한 느낌을 받았다. 면서기들도 능제호라고 쓰고 능지방죽이라고 읽었다.

큰 호수 안에는 으레 섬이 있듯, 능제에도 제법 큰 두 개의 섬이 있다. 이 섬들은 오랜 세월 오리들의 낙원이었다. 이 오리들은 시베리아에서 날아와 둥지를 틀고 알을 낳고 부화를 시켜 새끼를 키운 후, 시베리아로 돌아가기를 수만 년 거듭했다.

자연계에는 언제나 낙원과 지옥이 공존하듯, 평화롭게 보이는 이 섬도 예외일 수는 없다. 섬에는 머물던 새들이 낳은 알과 새끼들이 있는가 하면 이것들을 노리는 뱀들도 있다. 사람들은 뱀들이 어떻게 섬으로 들어갔는지 궁금해했는데 언젠가 능제 주변에 사는 한 아낙이 이런 증언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어릴 때 봤는디, 비얌 한 마리가 물위로 몸뜅이를 꼬부렸다 쭉쭉 피면서 섬 쪽으로 가드만….” 아직 작명조차 안 된 능제의 두 섬이 어쩌다 조류와 파충류의 세렝게티가 된 것이다.

아낙들은 능제에서 빨래를 하고, 사내들은 능제의 물을 끌어다 농사를 지었다. 어쩌다 시간이 나면 낚시를 하고 투망을 던져 붕어와 피라미인 단치를 잡아 얼큰한 탕을 만들고 그것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켰다. 재수가 좋아 살집이 좋은 가물치나 장어를 잡으면 얼굴에 마른버짐이 퍼진 어린것들에게 고아 먹였다.

능제 주변 사람들은 ‘스무 근짜리 잉어를 잡았다’고 하기도 하고 ‘달이 뜨는 밤이 되면 과수댁의 죽은 서방이 산 각시에게 퉁소를 불어준다’는 말을 지어내기도 했다.

능제는 사시사철 물을 담고, 가지가지 사연도 품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여름 해도 겨울 해도 능제를 끼고 뜨고 졌다. 달도 능제 수면 위에 밤새 머물다 갔다. 해가 뜨건 달이 뜨건 능제는 그저 고요하기만 했다.

그 시절 독한 겨울 추위는 능제를 꽁꽁 얼게 했다. 만경읍에 장이 서는 날이면 솔가지를 파는 사람들은 솔가지를 새끼로 묶어 꽁꽁 언 능제 위로 끌고 가 장에 내다 팔았다. 얼어붙은 능제에도 얼지 않는 곳이 있었는데 동네 사람들은 그곳을 ‘능제가 숨 쉬는 배꼽’이라고 불렀다. 그 배꼽에는 청둥오리들이 날아와 유유히 수영을 즐겼다.

동네 사람들은 오리들이 추위를 어떻게 견디는지 궁금해했다. “안 추운가? 몸뚱이에는 털이 있으니 그렇다 치고 발이 굉장이 시릴 챔인디….” 그들은 오리가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궁금해하면서 나름대로 짐작을 말했다. “쏘련에서 올 거여. 쏘련이 너무 추워서 일로 왔겄지….” 사람들은 ‘쏘련’을 힘주어 말했다. 그때는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기 전이었다.

동네 사람들의 짐작대로 오리는 시베리아 바이칼호에서 몽골과 중국 동북 3성을 거치는 3000㎞를 날아온다. 낱알을 좋아하는 오리가 농작물에 피해를 주기도 했지만 동네 사람들은 개의치 않았다. 드넓은 금만평야는 먼 길을 온 오리에게 언제나 후했다.

세월이 흐른 능제에는 이제 겨울이 되어도 꽁꽁 언 얼음도, 시베리아에서 날아오는 오리도 볼 수 없다. 적지 않은 수의 오리들이 텃새가 되어 먹이가 풍부한 능제에 눌러앉아 산다. 오리의 삶이 글로벌에서 로컬로 바뀐 셈이다.

오리 떼를 바라보는 나그네에게 중앙아시아에서 온 청년들이 싱긋 미소를 보낸다. 농촌 고령화 탓에 논농사를 도와주러 온 일꾼들이다. 젊은이들이 떠난 논두렁을 걸으니 정겨운 이름 ‘막동이’와 ‘끝순이’가 떠오른다. 적막 속에 그 시절 아이들 노는 소리가 들린다. 환청일까?

근처 마을에 사는 유장희 어르신은 마을회관 주변 잡초를 뽑다 잠시 허리를 펴고 땀을 훔치며 말씀하신다. “젊은이는 서울로, 늙은이는 저승으로 떠나…. 고향을 지키는 일이라면 뭐든 하고 싶소.” 어르신은 사람 없는 고향을 두려워했다.

곽정식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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