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을 맡았던 안철수 의원이 “당 지도부가 인적 쇄신 요구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전격 사퇴했다. “사망 직전 코마(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당을 반드시 살려내겠다”며 혁신위원장직을 수락한 지 닷새 만이다. 안 의원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냉정히 평가한 뒤 보수 정치를 오염시킨 고름과 종기를 도려내겠다는 포부를 밝혔었다. 안 의원이 비상계엄에 반대하고 탄핵에 찬성했던 터라 ‘안철수 혁신위’는 국민의힘을 되살릴 마지막 카드로 여겨졌었다. 어제 위원 구성을 마치고 공식 출범할 예정이었지만, 안 의원이 “혁신의 문을 열기도 전에 거대한 벽에 부닥쳤다”며 당대표 선거 출마 의사를 밝힘에 따라 첫발을 떼지도 못하고 사실상 좌초될 처지에 놓였다.
혁신위 파행은 친윤 구주류에 대한 안 의원의 인적 쇄신 요구를 당 지도부가 거부했기 때문이다. 안 의원은 “혁신은 인적 쇄신에서 시작되는데, 목숨이 위태로운 환자의 수술동의서에 끝까지 서명하지 않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자괴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친윤계의 대표 격으로 대선 과정에서 후보 교체 시도 등으로 논란을 일으킨 권영세 전 비대위원장과 권성동 전 원내대표 등에 대해 탈당에 준하는 조치를 요구했으나 송언석 비대위원장이 거부했다는 것이다. 혁신위원장에게 당을 되살릴 전권을 줘도 모자랄 판에 여전히 친윤 구주류가 당을 좌우하는 국민의힘의 민낯이 또 드러난 것이다.
자신들이 배출한 대통령이 무도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탄핵당하고, 이어진 대선에서 패배했는데도 국민의힘은 쇄신의 가능성마저 계속 봉쇄하고 있다. “국민의힘 혁신 노력은 빵점”이라며 물러난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이 제시했던 5대 혁신안 역시 친윤 기득권 세력의 벽에 부닥쳐 좌절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를 맹목적으로 옹호하고 추종하다가 비상계엄에도 거리를 두지 않은 채 탄핵에 반대했던 이들이 여전히 당권을 차지하고 기득권 지키기에 몰두하고 있음이 거듭 확인됐다.
‘안철수 혁신위’마저 파행하면서 국민의힘이 국민의 지지를 다시 받을 수 있을지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의석의 절반 이상이 영남에 있고 수도권 의석은 19석뿐인 국민의힘은 텃밭인 대구·경북에서조차 당 지지율이 30%대로 하락했다.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국정 운영 지지도가 대구·경북에서도 50%를 넘었다. 과거 ‘천막당사’처럼 당 해체 수준의 과감한 환골탈태를 해도 모자랄 판에 영남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완강하다. 이 대통령과 거대 여당이 올바른 국정 운영을 하도록 견제하려면 건전한 야당의 존재가 필요하다. 8월로 예상되는 전당대회에서 국민의힘이 과연 낡은 기득권 정치와 지역당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수 정당의 명맥을 살려낼 개혁파 리더십을 세울 수 있을지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