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전 10시 30분 충남 태안군 고남면 영목항. 계류장 양쪽으로 선박 30여 척이 빼곡하게 정박해 있다. 갑자기 한 선박에서 폭발음이 들리고 뿌연 연기가 번졌다. 선박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화재를 목격한 한 주민이 태안해경 영목파출소와 119소방대에 신고했다.
이 주민은 선주(선장 포함)들이 참여하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단체방에도 화재 소식을 알리고 현장으로 나와 달라고 요청했다. 해경과 주민들은 곧바로 육상에 설치된 옥외소화전에서 호스를 꺼내 계류장으로 달려갔다. 화재 선박에 도착한 해경과 주민이 신호를 보내자 소화전 주변에 있던 해경 경찰관이 밸브를 열었다. 화재 발생 1분 만의 초동 조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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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대비 옥상소화전 설치…육지·해상 동시 진화
주민과 해경이 소화전 호스를 잡고 발화지점으로 강력한 물줄기를 쏘는 동시에 인근에서 순찰 중이던 해경 연안구조정이 포구로 들어왔다. 연안구조정에서 내린 해경은 배수펌프를 들고 달려와 화재 진압을 지원했다. 신고를 접한 119소방대도 현장에 도착, 불길이 주변 선박으로 번지는 것을 차단했다. 계류장에 도착한 선장들은 곧바로 자신의 배를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켰다.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서였다. 해경과 119소방대, 주민들의 공조로 선박에서 발생한 화재는 신고 10여 분 만에 완전히 진화됐다.
이날은 계류장에 정박한 선박에서 화재가 발생할 것에 대비한 가상훈련이었다. 어촌마을 특성상 선박에서 불이 나면 해경은 물론 주민과 119소방대, 군(軍)의 공조가 필수적이다. 특히 마을 주민들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수십 년간 어업에 종사해온 주민들은 한밤중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부둣가 인근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다. 이날 훈련에서 선박 화재를 가장 먼저 목격한 것도 주민이고 해경과 함께 초동조치에 나선 것도 마을 주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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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조난 등 사고 때 주민 역할 가장 커
태안해경은 매년 4차례 계류장에 정박한 어선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상황에 대비한 훈련을 진행 중이다. 계류장에는 선박이 빼곡하게 묶여 있는 데다 재질이 대부분 FRP(섬유강화 플라스틱)이라 불에 취약하다. 화재가 발생하면 급속도로 확산할 수 있고 피해도 그만큼 커진다는 얘기다.
실제 2021년 3월 23일 새벽 충남 태안군 근흥면 신진항에서는 정박 중이던 어선에서 발생한 불이 주변 선박으로 옮겨붙으면서 모두 23척의 선박이 침몰했다. 현장에서는 초속 8m의 강한 바람이 불어 순식간에 불길이 다른 배로 확산했다. 소방당국이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인력 280여 명과 장비 80여 대를 동원했지만, 화재 진화에는 3시간 30분이 걸렸다. 당시 선박들은 나란히 줄로 묶은 상태라 피해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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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태안 신진항 선박 화재로 23척 침몰
지난해 11월 10일에는 영목항 해상에 정박 중이던 어선(6.6t급)에서 불이나 1시간 만에 진화됐다. 불이 난 상황을 목격한 다른 주민이 곧바로 현장으로 배를 몰고 가 선장을 구하면서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당시 선장을 구했던 유선용씨(68)는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번지는 것을 보고 바로 달려갔다”며 “뱃사람들은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포구에서 머물기 때문에 신속한 대처가 가능하고 주변 전파도 이뤄진다”고 말했다.
태안해경 영목파출소에는 40명의 해양재난구조대가 활동 중이다. 모두 마을 주민들로 이뤄진 민간조직이다. 부둣가는 물론 해상에서 화재나 조난 등의 사고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현장으로 이동할 수 있다. 수십 년 살아온 삶의 터전이라 뱃길도 훤하고 멀리서 선박의 모양만 봐도 누구 소유인지를 알 수 있을 정도다. 피서철과 낚시철에 자주 발생하는 레저보트 조난 사고 때도 대부분 해양재난구조대가 구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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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 "훈련 규모 확대, 주민 연대 강화"
태안해경 신봉식 영목파출소장은 “실전과 같은 환경에서 주민과 해경, 119소방대, 군이 합동으로 대응하기 위해 훈련을 진행했다”며 “앞으로 훈련 규모를 확대하고 주민과의 연대도 강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