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2분기 영업이익이 절반 이하로 꺾였다. 전날 LG전자에 이어 한국 1·2위 전자기업 실적이 줄줄이 반 토막 나면서, 한국 전자·반도체 산업에 ‘시장, 경쟁자, 생산기지’인 중국의 그림자가 재확인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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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전자산업 덮친 중국 변수
8일 삼성전자는 지난 2분기 매출 74조원에 영업이익 4조6000억원을 올렸다는 잠정 실적을 공시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0.09%, 55.94% 줄었다. 매출 규모는 비슷하지만 영업이익은 절반 이하로 쪼그라들었고, 증권가 예상치(6조원 안팎)에 못 미치는 어닝 쇼크다.
잠정 실적 공시에서는 사업부 매출 등 세부 내용을 밝히지 않는다. 다만 업계에서는 삼성전자 DS(반도체)부문 3개 사업부 중 파운드리(위탁생산)와 시스템LSI(설계) 사업의 적자가 지속하고, 메모리 사업부도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부가 제품에서 뚜렷한 실적 개선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본다. 2분기는 스마트폰 신제품 출시 효과가 사그라지는 MX(모바일경험)사업부의 비수기이고, TV와 가전 사업도 미국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과 소비자 수요 위축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1분기에는 반도체 부진을 MX가 메워줬는데, 이번에는 그런 보완이 없었다.
이날 삼성전자는 이례적으로 ‘주요 하락 요인 설명자료’를 내고, ‘반도체 부문 이익 하락은 재고 충당 및 첨단 인공지능(AI) 칩에 대한 대(對)중국 제재 영향’이라고 밝혔다. 구형 HBM 등 메모리 반도체 재고를 다 판매하지 못할 수 있어 이를 2분기에 평가손실로 반영한 탓에 실적이 나빠졌고, 비메모리 반도체는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제재로 판매에 제약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반도체 재고를 선제적으로 비용 처리한 만큼, 하반기에 반도체가 팔려나가 재고가 소진되면 실적이 반등할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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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자 경쟁자이자 생산지’인 중국
중국은 한국 전자산업에 복합적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삼성 반도체는 ‘수출 시장 중국’의 격변으로 타격이 크다. 올해 1월 1일부터 미국 정부가 중국으로의 모든 HBM 수출을 막자 삼성 구형 HBM 수출이 급감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최신 HBM인 HBM3E(5세대) 12단을 미국 AMD에 공급하기 시작했으나 AI 칩 시장의 지배자인 엔비디아의 주력 공급망에는 포함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시장을 제대로 차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중국 수출 문마저 좁아진 거다.
파운드리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중국 바이두가 지난 2019년부터 첨단 AI칩 생산을 삼성에 맡기는 등 삼성은 중국에서 파운드리 일감을 챙겨 왔다. 그런데 미국 제재 강화로 중국 판매에 제약이 생기자, 미국 빅테크 고객을 확보하지 못한 삼성 파운드리는 가동률 저하가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연말 파운드리 전략 마케팅실 리더십을 교체하고 바이두와 초기부터 협력을 맡았던 노미정 상무를 투입하는 등 고객사 확보 타개책을 찾고 있다.
LG전자는 전날 반 토막(-46.6%) 난 잠정 영업이익을 발표했는데, 중국과의 치열한 TV 경쟁 여파가 컸다. 관세 전쟁 속에 소비 심리가 위축된 데다가 ‘가성비’를 앞세운 중국 TV 업체들과 마케팅 경쟁을 벌이며 수익성이 저하됐다.
SK하이닉스는 ‘생산지 중국’의 위험 요인을 안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의 1차 HBM 공급사로 미국 시장 비중을 키웠고, 기술 경쟁 우위도 유지하고 있다. 다만 D램의 40%와 낸드의 20%가량을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어, 향후 트럼프 정부의 중국 생산지 제재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7일 로이터통신은 중국 창신메모리(CXMT)가 중국판 나스닥인 과창판(科創板)에 기업공개(IPO)를 위한 상장 지도를 등록했다고 보도했다. 한국 반도체 경쟁자로 급부상 중인 CXMT가 IPO 후 자금력을 바탕으로 몸집을 키울 위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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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3.9조원 자사주 매입 의결
한편, 삼성전자 이사회는 8일 오전 3조 9119억 원어치 자사주 매입을 의결했다. 이중 1조1000억 원은 임직원 상여 지급 등 주식 보상 목적이고, 나머지 2조 8119억원은 주주가치 제고 목적으로 소각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1년간 10조 원 규모 자사주 분할 매입’을 의결한 이후 단계적으로 시행해 왔다. 회사는 지금까지 6조1000억 원어치 자사주를 매입했고, 남은 3조9000억 원어치 매입을 이번에 실행한다고 밝혔다. 이날 삼성전자 주가는 전날보다 0.49% 내린 6만1400원에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