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금융사들이 ‘6·27 대출 규제’ 전에 계약한 사람에게도 대출 제한 조처를 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하반기 대출 총량이 절반가량 줄어든 상황에서, 금융사들이 대출 수요가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금융당국의 가이드를 임의로 어기고 있는 것이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A보험사는 최근 ‘6월 27일 이전에 매매계약을 체결했어도, 6월 28일 이후 최초설계(대출 신청)를 확정하지 않았다면, 종전 대출 규정을 적용하지 말라’는 내부 지침을 내렸다. ‘6·27 대출 규제’ 전에 계약했더라도, 규제 시행일 이후에 대출 신청을 했다면 새로 발표한 대출 규제를 똑같이 적용하라는 의미다. 또 6월 27일 이전에 전세 계약을 한 거래에 대해서도 “예외를 두지 않고, 임차보증금 반환 목적의 생활안정자금대출을 1억원 이하로 주라”고 가이드를 내렸다.
원래 금융위원회는 대출 규제 시행일(6월 28일) 이전에 계약한 거래는 종전 대출 정책을 그대로 적용하겠다고 밝혔었다. 이 때문에 대출 규제 시행일 이전에 주택 매매 계약을 맺었거나, 전세 계약을 맺었다면 6억원을 넘겨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A사는 별도의 내부 지침을 내려, 일부 대출 규제 시행일 이전 거래까지도 대출 제한 조처를 내린 것이다. A사 관계자는 “금융위가 밝혔던 종전 대출 정책 적용 대상을 규제 전 계약만 한 것이 아니라, 대출 신청까지 한 경우로 좁혀 적용한 것”이라며 “실거주자 등 어려운 사례가 있으면 별도 심사해서 대출이 나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일부 은행들도 대출 신청까지는 받고 있지만, 새로운 규제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일부 신청 건은 대출 실행 절차를 밟지 않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예를 들어 임차보증금 반환 목적의 생활안정자금 대출은 대출 규제 전에 계약을 맺었다면, 1억원 한도 제한이 없다고 금융당국은 밝혔지만, 이것이 역전세 사례만 포함하는 것인지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면서 “세부 기준이 확정되지 않으면 대출을 진행하기 당장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은행들은 새로운 대출 규제 적용과 관련해 세부 질의를 모아 금융당국에 추가 답변을 받아본 뒤 대출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융사들이 금융당국이 제시한 대출 경과 규정까지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은 대출 수요가 지나치게 몰릴 것을 우려한 것이란 지적이 많다. ‘6·27 대출 규제’에는 금융사의 하반기 대출 총량을 절반으로 줄이는 안도 포함돼 있다. 이 때문에 새로운 대출 총량을 맞추기 위해서는 일단 최대한 대출을 제한해야 한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밝힌 대로 규제 전 계약자에게 종전 대출 규정을 적용할 경우 대출 수요가 쏠리면서 대출 총량을 맞추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은행들은 여전히 비대면 접수를 막아 놓고 ‘눈치 보기’ 중이다. KB국민은행은 비대면 대출 접수를 7월 2일부터 재개했지만, 6월 27일 이전 계약자만 접수를 받고 6월 28일 이후 계약자는 신청을 받지 않고 있다. 신한·하나·우리은행은 비대면 접수 자체를 중단했다.
비대면 접수 제한뿐 아니라 대출모집인을 통한 주담대(주택담보대출) 신청도 줄줄이 중단 중이다. 기업은행은 7일부터 대출모집인 취급주담대를 잠정 차단했고, 신한은행은 이달 시행될 주담대도 대출모집인 통해 신청할 수 없게 막았다. NH농협은행도 이달 대출모집인 신청 한도가 소진됐다.
엄격한 대출 규제 적용도 필요하지만, 규제 발표 전에 계약을 한 사람에 대해서는 보호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미 계약을 한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규제로 대출을 받지 못하면 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볼 수 있다”면서 “규제 전에 계약한 거래는 대출 총량제에서 제외 시켜주는 등의 방식으로 보호책을 정부에서 마련해 줘야지, 금융사 자율에 맡겨서는 안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