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1차전에서 중국을 3-0으로 꺾은 지난 7일 경기 용인미르스타디움. 한국 축구대표팀의 전천후 공격수 이동경(27)은 손사래까지 치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겸손한 소감과는 달리, 전반 8분 이동경의 골은 그야말로 ‘원더골’이었다. 손흥민(33·토트넘)의 전매 특허와도 같은 페널티 박스 오른쪽 45도 지점, 이른바 ‘손흥민 존’에서 이동경은 왼발로 감아 중거리슛을 때렸다. 공은 골키퍼가 손도 댈 수 없는 골문 왼쪽 상단 구석에 꽂혔다. 홍명보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이동경이 경기 초반 장점인 왼발로 골을 터트려 경기를 쉽게 풀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왼발의 달인’ 하석주, ‘앙팡테리블’ 고종수, ‘왼발의 마법사’ 염기훈 등 한국 축구에는 왼발을 잘 쓰는 선수가 많았다. 그런데 이동경은 이들과는 좀 다른 유형의 왼발잡이다. 그는 오른쪽 측면에서 중앙 안쪽으로 치고 들어가 중거리슛을 때린다. 공은 겨드랑이와 무릎 사이의 높이로 낮고 빠르게 날아가 양쪽 구석에 꽂힌다. 슈팅의 임팩트가 좋고, 기회만 포착하면 욕심을 내 과감하게 때린다.
이동경은 “슈팅하는 걸 좋아해 훈련 때도 많이 연습한다. 자신 있게 많이 때려야겠다는 마음으로 하다 보니 경기장에서도 좋은 슈팅이 나오는 것 같다”고 비결을 소개했다. 김천 상무 소속의 병장 이동경은 올해 10월 전역을 앞두고 집중적인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근력을 키우고 있다.
한국 축구는 12차례 월드컵에서 39골을 넣었는데, 그 중 중거리슛 득점(프리킥 포함)이 15골이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스페인전 황보관의 캐논슛, 2006년 독일월드컵 토고전 안정환의 호쾌한 중거리포가 대표적이다. 객관적 전력이 열세인 팀이 경기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강력한 중거리포 한 방인데, 이동경이 바로 그걸 해줄 수 있는 선수다.
그간 대표팀에 ‘퐁당퐁당’ 소집됐던 이동경은 막상 소집돼도 이강인(파리생제르맹), 이재성(마인츠) 등 쟁쟁한 유럽파에 밀려 출전 기회가 적었다. 국내파의 시험 무대인 동아시안컵에서 그는 4년 만의 A매치 2호 골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2022~23년 독일 분데스리가 샬케와 한자 로스토크에서 실패하고 돌아온 이동경은 올 시즌 K리그1 공격포인트 5위(6골·4도움)에 올라 있다.
이동경은 이름이 도쿄의 한자 독음과 같아 ‘도쿄 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실제로 이름도 “도시 또는 나라로 이름을 지으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란 말을 듣고 할머니가 작명소에서 지어왔다. 그는 할머니가 들었던 그 ‘좋은 일’이 내년 북중미월드컵 출전이 되기를 바란다. 그는 “월드컵은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가고 싶은 무대다. 그 꿈을 이룰 수 있게 끝까지 경쟁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