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말, 영국에서는 특이한 정원이 등장한다. ‘물을 주지 않아도 되는’이라는 개념으로, 가뭄에 강한 식물들을 모아 식재하고, 그 위를 자갈로 덮어주는 낯선 정원이었다. 이 정원을 만든 사람은 베스 샤토로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영국인들에게 가장 존경받던 가드너 겸 식물학자였다. 사실 영국은 비가 매일 내린다는 현실과 다르게 연중 강수량이 우리보다 훨씬 적고, 특히 여름철엔 가뭄이 종종 찾아온다. 내가 유학 중이었던 2005년에도 연평균의 25%에 못 미치는 강수량 때문에 뉴스에서 정원에 물 주는 일을 중단해 달라는 메시지가 전달될 정도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건조함에 강한 자갈정원’은 물 부족을 해결하고, 뜨거워지는 지구에 적응할 수 있는 대안으로 생태적으로도 큰 화제였다.
실제로 이 정원이 만들어진 곳은 원래는 주차장이었다. 베스 샤토는 수년간 차량이 지속적으로 눌러놓은 땅에 식물이 과연 살 수 있을까, 일부러 물을 주지 않고 내리는 비만으로도 생존이 가능한 식물이 있을까를 고민했다고 전해진다. 사실 그녀의 가드닝 원칙은 좀 달랐다. ‘식물이 좋아하는 환경을 찾아주는 것이 가장 좋은 가드닝’이라는 신념으로 식물의 자생지를 분석하고 공부했던 사람이었다. 오랜 연구 끝에 그녀는 이 지구의 식물을 그늘에 가능한 식물, 햇볕을 좋아하는 식물, 물을 좋아하는 식물 등으로 구별하는 작업을 완성했고, 이 특징을 이용해 만든 게 바로 자갈정원이었다,
20년 전 영국에서 정원 공부를 할 때, 수업의 가장 큰 핵심은 ‘지구온난화와 정원’이었다. 그때만 해도 왜 이렇게 호들갑일까 싶었는데 지금은 속이 쓰리다. 도시 속의 가로수나무 한 그루의 그늘이 에어컨을 종일 켜 놓는 것보다 낫다고 생태학자들은 말한다. 길을 더 크고 넓게 만들 것이 아니라 아스팔트를 들어내고 한 그루의 나무라도 더 심어야 하나, 그 고민에도 머물게 된다. 이제라도 뭐든 좀 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