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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의 마음 읽기] 폭염의 칠월을 살며

중앙일보

2025.07.08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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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시인
해마다 여름을 나면서 무더위를 겪지만 해가 갈수록 이 무더위를 어떻게 지내야 하나 걱정이 많아진다. 제주에도 가뭄이 길게 이어지고 있고, 찌는 듯해 견디기 어려운 더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내가 사는 시골 마을의 수리계에서는 지난주에 문자를 보내왔다. 수리계는 식수나 논밭 농사를 짓는 데에 필요한 물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계이다. 가뭄으로 고지대 농가에 물이 공급되지 못하고 있고, 상황이 매우 어려우니 물을 아껴서 사용해달라는 요청의 내용이었다. 밭의 작물에 물을 대려고 해도 물줄기가 형편없이 약해진 것을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세상이 달궈진 쇠처럼 덥지만
여유롭고 호탕하게 마음 쓰면
몸 식힐 그늘쯤 어디든 있으니

김지윤 기자
아마도 가뭄과 무더위 때문일 텐데, 텃밭의 오이며 토마토에도 올해 여름에는 열매가 훨씬 덜 달렸다. 우선 꽃이 적다. 꽃이 적으니 열매도 적다. 내 집만 형편이 이러한 것이 아닌 게 동네에서 애호박 농사를 짓는 집들이 있는데, 지나다 보니 벌써 밭을 갈아엎어 놓았다. 애호박 농사를 포기한 것이었다. 가물어서 흙이 푸석푸석하니 작물이 자라기 어렵다. 사람의 인심도 메마르게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 세계가 대장간에서 벌겋게 달궈진 쇠 같으니 올해는 여름나기가 더욱 버겁다.

이런 가운데서도 마음을 사용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한 일이 최근에 있었다. 하나는 스님을 뵈었을 때의 일이었다. 스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더니 차를 한잔하자고 하셨다. 스님의 처소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발우였다. 발우는 스님의 공양 그릇이니 식사를 할 때 음식을 덜어서 담는 그릇이다. 스님의 등 뒤에 발우가 천으로 싸매져 있었다. 발우가 풀어지지 않도록 꼭 맨 그 모양새는 어떤 곧고 바르고 야무진 성품을 느끼게 했다.

스님은 먼저 찻물을 끓였다. 그러고는 펄펄 끓는 찻물을 대접에 붓더니 그 대접을 높이 들어서 아래에 놓인 다른 대접에 천천히 부었다. 찻물의 물줄기가 소리를 내며 쏟아졌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스님이 이 동작을 아주 여러 차례 반복하는 것이었다. 물을 대접에 옮겨 담는 일을 거듭해서 되풀이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마치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 의문스러워 여쭸더니 찻물이 너무 뜨거워 식히기 위함이라고 했다. 내 궁금점에 대답한 후에도 스님은 두어 차례 더 물을 대접에 옮겨 담았다. 그런데 뭐랄까, 나는 스님의 그 모습에서 오랜만에 평온함과 시원한 여유를 느꼈다. 서두르지 않고, 찬찬히, 적당하고 맞춤한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며 살라는 무언의 말씀 같았다.

마음을 사용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한 또 하나의 일은 임제의 시를 읽는 데에 있었다. 조선시대 문장가인 임제의 호는 백호(白湖)이다. 무더위를 피해서, 아주 날이 뜨거운 한낮의 시간에 임제의 시를 한 편 한 편 읽었다. 임제는 아주 호방한 이였다. 이런 시를 쓰기도 했다. “우주간에 늠름한 육척의 사나이/ 취하면 노래하고, 깨면 비웃으니 세상이 싫어하네.// (…) // 풍진 속 벼슬살이야 잠깐 동안 굽힘이니/ 강해(江海)의 갈매기와 누가 잘 어울릴까.” 대단히 장쾌한 시구였다.

임제가 송도를 지나다 황진이의 무덤에 들러 애도하며 지었다는 시는 꽤 알려져 있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엇난다/ 홍안을 어듸 두고 백골만 뭇쳣난다/ 잔잡아 권하리 업스니 그를 슬허하노라”라는 명문이었다.

그런데 자료를 살펴보니 임제가 1577년에 제주 목사로 있던 부친을 찾아뵙기 위해 제주도를 찾아온 일이 있었다. 그해는 임제가 문과에 급제한 해였고, 임제의 나이 스물아홉 살 되던 해였다. 11월에 제주도에 왔다 이듬해 2월에 제주도를 떠났다. 임제는 밤낮없이 치는 파도 소리에 꿈자리 또한 편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루 낮 하루 밤 온 시각을/ 파도소리 내내 성을 흔드네.// 이곳 사람 노상 들어 귀에 익건만/ 나그네는 마음이 뒤숭숭”이라고 애절하게 읊었다. 제주도의 음식에 대해 노래한 시구도 있다. “과일은 무엇이 있나, 금색 귤이 가장 맛 좋아라./ 반찬으론 옥두어(玉頭魚)가 빠지지 않더라.” 옥두어는 옥돔을 말한다. 부친이 있는 제주도에 찾아왔으나 생활의 환경이 익숙하지 않았고, 객수(客愁) 또한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호방한 마음은 잘 지녀서 한라산에서 남쪽의 바다를 바라보고선 “저 동정호 칠백리 물도 이에 비하면 물 한잔 쏟아놓은 웅덩이와 다름없다”고 일갈했다. 중국의 동정호가 크긴 크지만, 제주도 남쪽의 망망대해와는 견줄 수 없다는 뜻일 테니 그 마음의 호탕함은 가히 부러운 것이었다.

스님과 한 잔의 차를 마시면서, 그리고 임제의 시를 읽으면서 마음의 사용에 대해 느낀 바가 있었다. 폭염이 극심한 칠월이지만 이 마음을 잘 지니면 목을 축일 물과 몸을 식힐 그늘을 어디에서든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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