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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탈북 청소년의 잊히지 않는 작은 소망

중앙일보

2025.07.08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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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숙 여명학교 교장
지난해 1월 제정된 ‘북한이탈주민의 날’(매년 7월 14일)이 올해로 2회를 맞았다. 민망하게도 정권의 변화에 따라 북한 인권과 북한이탈주민 정책이 널뛰기했고, 통일부 존폐와 역할 조정 논란이 반복됐다. 정부가 바뀌면서 두 번째 북한이탈주민의 날을 지켜보는 탈북민 공동체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그동안 보수 정권은 약속한 듯 북한 인권과 북한이탈주민 정책을 강조했다. 반면 진보 정권은 북한과의 평화 공존에 집중하면서 북한이탈주민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대하는 듯했다. 이번 이재명 정부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전개될까 걱정이다.

올해로 두 번째 맞는 탈북민의 날
“북에 두고 온 가족도 행복했으면”
탈북민 지원이 바로 통일의 준비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정동영 민주당 의원은 “통일부 명칭 변경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정권과의 대화와 협력을 중시하는 진영에서는 통일부를 남북관계 중심으로 재편하되 탈북민 업무를 이관하자는 주장도 한다.

필자는 이주민과 난민을 만나온 경험을 바탕으로 탈북청소년들을 위한 대안학교인 여명학교를 2004년 시작했다. 한국으로 이주한 탈북청소년에겐 소외계층의 어려움은 기본이지만, 여기에 더해 남북한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과 질풍노도라는 사춘기 청소년으로서 다중적 어려움을 한꺼번에 겪고 있다. 그래서 이들을 교육하려면 더 세심한 지원과 전문성이 필요했다.

2015년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이 여명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통일 전에 서독 정부가 수많은 동독 탈출자를 서독 전역에 흩어서 정착시키며 일반 행정 시스템을 동일하게 적용했다. 만약 서독이 이들의 삶의 경험에 비춰 전문적인 교육과정을 마련하고 통일을 준비했다면 통일 이후 통합은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은 여명학교와 같은 시스템을 통해 (통일을) 잘 준비하고 있어 다행이다”라고 격려해줬다.

인류의 역사는 분열과 통합의 반복이다. 서독 지도자들은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 사건을 예견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남북통일의 방법과 정책을 차치하더라도 한반도 역사가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언젠가는 다시 함께 살아가게 될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지금 당장은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한반도에서 분단의 마무리와 통일 준비라는 과업은 정권을 떠나서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마땅하다. 그 과정에서 북한이탈주민의 역할을 경시하고 간과해서는 안 된다.

헌법에 규정된 통일은 지상 명령이며, 남북관계 개선과 북한이탈주민을 통한 통일 준비는 수레의 두 바퀴다. 결코 한쪽만으로 달성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통일부의 역할은 남북관계 개선도 중요하지만, 북한이탈주민 등 분단의 피해자들을 지원하며 분단을 마무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것이 통일을 제대로 준비하는 것이다. 탈북민 치유와 그들과의 사회통합 경험은 통일 이후 한국사회에 꼭 필요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통일과 북한 문제를 논하면서 과연 북한이탈주민를 배제하거나 분리할 수 있을까.

필자는 여명학교에서 생활하는 탈북 청소년들에게 “너희들에게 통일은 무엇이니”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학생들은 “집으로 가는 행복한 길” “엄마를 평화롭게 만나는 유일한 방법” “죽어가는 가족을 살리는 방법이자 꼭 이루고 싶은 꿈”이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통일의 의미를 이야기했다.

이런 답을 듣고 숙연해진 필자는 “그럼 통일이 되면 어떤 일을 하고 싶니”라고 물어봤다. 학생 한 명이 “통역사가 되고 싶다”고 해서 되물어봤더니 “남북한 사람들이 서로를 너무 모르다 보니 남한 사람이 주지 않는 상처도 받으며 힘들어했다. 그래서 통일이 되면 서로의 마음을 통역해 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들에게 북한을 잊고 살라고, 당장은 어려워 보이니 통일을 머릿속에서 지우라고 강요할 수 있을까. 정치인들이 외치는 거창한 평화보다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에게 내가 누리는 자유와 행복을 누리게 하고 싶은 것이 3만4000명 탈북민의 작지만 강렬한 소망이다.

올해로 2회째를 맞은 북한이탈주민의 날을 정부가 바뀌었다는 이유로 없앨 것인가. 오히려 북한이탈주민의 날을 단순한 기념일을 넘어 분단 현실을 버텨온 이들을 기억하고, 함께 통일을 준비하자는 적극적인 ‘통일 준비의 날’로 기념하였으면 좋겠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명숙 여명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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