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이 탈출구 없이 악화일로로 치닫게 된 요인이 한둘이 아니지만, 그 중심엔 2000명이란 과격한 숫자가 있었다. 지난해 2월 윤석열 정부가 기존 의대 정원의 70% 가까이 한 번에 늘린 2000명 증원 계획을 발표하자 정원 확대론자들조차 무리수라며 우려했다. 합당한 근거나 적절한 논의 없이 나온 숫자라 다들 출처가 궁금했지만,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지난해 가을쯤 우연히 국공립대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서울대 교수를 만나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충남대 총장 시절 행보를 전해 듣고 모호하나마 그림이 그려졌다. 2023년 말 정부는 의대 증원 명분을 쌓으려고 전국 의대 수요 조사를 했다. "용산(대통령)이 큰 숫자를 원한다"는 보도에 발맞춰 가장 먼저 바람을 잡은 게 당시 이 후보자가 이끌던 충남대다. 기존 정원(110명)의 무려 네 배 가까운 410명 증원 신청을 가장 먼저 하면서 전국 의대의 경쟁적 증원 확대를 부추겼다. 직접 의대생을 교육하는 충남대 의대는 교육 부실을 걱정해 "증원은 45명을 넘기기 어렵다"고 했다는데, 이 후보자가 이렇게 밀어붙였다고 한다.
" "예산하고 똑같아요. 이런 건 무조건 공(0) 하나 더 붙이는 거예요. " "
복수 관계자의 증언이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가 나중에 "실제 여건에 비추어 무리한 희망 증원 규모를 제출했다"고 사과한 데서 알 수 있듯, 교육 당사자인 학생·교수에 대한 고려는 일절 없는 정치적 결정이었다. 아무리 위상이 이전만 못 하다 해도 대학은 여전히 연구와 교육이 기본인데, 본분은 팽개친 듯한 모습이었다.
의대 2000명 명분 만든 장본인
연구·교육보다 정치 논리 우선
표절 의혹 교육 수장은 안될 말
그때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 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 이름이 윤 정부 자멸 후 새로 들어선 이재명 정부의 첫 교육부 수장으로 다시 등장해 깜짝 놀랐다. 충남대 교수회의 한 핵심 교수가 "내실보다 외형을 중시하고, 권력에 민감한 편"이라고 박한 평가를 하길래 사실 좀 지나치다 싶었다. 그런데 지난 정부 역점사업인 의대 증원에 앞장서다 지난 대선 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중앙선대위에서 서울대 10개 만들기 추진위원장을 맡은 경력을 보고 있자니 이 평가가 그리 박하기만 한 건 아닐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후보자 본인은 억울할 수 있다. 국공립대·사립대 모두 자율성은 고사하고 재정난에 허덕이다 보니 총장은 교육자 역할보다는 교육부 눈치 보며 예산 따오기 위해 경영자나 정치인 자질을 더 키웠어야 했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최소한 지켜야 할 선은 있다. 의대 증원이 아무래 필요해도 근거 없이 "2000명 고(Go)!"를 외쳐선 안 되는 것처럼, 무슨 논리를 들이대도 교육 역량과 인프라·수요 등 복합적 문제를 깊이 있게 논의해 결정해야 할 의대 증원과 같은 중요한 정책 사안을 무리하게 처리했던 인물이 교육 행정에 어울리는지 의문이다.
연구 윤리 위반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논문 쪼개기(중복 게재)나 제자 논문 가로채기, 표절 등 자고 일어나면 새로 등장하는 의혹 탓에 국민은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인데 정작 당사자는 "청문회 때 소명하겠다"며 사실상 버티기에 들어갔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이 어제(8일) "제자 논문을 통째로 표절했다"며 급하게 베껴 쓴 흔적을 제시한 대목에서는 김건희 여사의 어처구니없는 '유지(Yuji)' 논문마저 떠오른다.
이 후보자는 지명 직후 서울대 10개 만들기 경력을 얘기하며 "이 대통령이 지방 출신인 나를 지명한 건 교육을 통해 국가 균형 발전을 실현하라는 뜻"이라고 했다. 서울대 하나(1)에 공(0) 하나 더 붙이면 손쉽게 전국에 서울대 10개를 만들 수 있다고 여기는 걸까. 확실한 건 연구와 교육보다 정치에 더 관심 있는 폴리페서로는 그 어떤 제대로 된 교육 정책도 펼칠 수 없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