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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없이 이상형 찾아준다…질문 100개 하는 'AI소개팅앱'

중앙일보

2025.07.0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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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팅앱 진화…사진도 없이 어떻게 이상형 찾아줄까
경제+
코로나19 팬데믹이 촉발한 ‘앱만추(앱으로 만남 추구)’ 시대. 오프라인 기반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의 자리를 온라인 데이팅 앱이 대신했고, 플랫폼 회사들은 수백 억원 뭉칫돈 투자받으며 축제 분위기를 누렸다. 하지만 이 또한 한때. 어느새 후속 투자는 말라갔고, 가짜 계정 논란이 커지는 통에 이용자 반응도 예전 같지 않다. 허나 스타트업계에서 위기는 기회다. 앱만추 기존 강자들의 약한 고리를 파고든 신흥 데이팅 앱이 역발상 전략으로 앱만추 2.0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이들이 내세운 건 진정성. AI 기술로 이용자 가치관과 믿을만한 경력에 기반해 만남을 이어준다. 각종 인증 체계를 도입하고, 실명 공개·사진 비공개 등 새로운 시도를 통해 시장 지형을 바꾸고 있다.
앱만 켜면 연예인 같은 외모를 자랑하는 이성의 프로필이 줄줄 나오는, 데이팅 앱. 앱만추 강자들의 위기는 이 지점에서 시작됐다. 지난 5월 말 공정거래위원회는 데이팅 앱 아만다·너랑나랑의 운영사였던 테크랩스에 과징금 5200만 원을 부과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테크랩스는 2021년 10~11월, 운영하던 대만 데이팅 앱(연권)에 가입된 여성 이용자 사진을 도용해 국내 앱 아만다와 너랑나랑에 270여개 가짜 여성 계정을 만들어 운영했다. 직원들은 이 계정으로 각 앱에 접속한 뒤 6만 명 넘는 남성 이용자에게 접근해 유료 결제를 유도했다. 공정위는 이를 전자상거래법이 금지하는 ‘기만적인 방법을 사용해 소비자를 유인하는 행위’로 판단했다.

김경진 기자
업계에선 테크랩스가 불법적인 가짜 계정을 만들게 된 배경에 대해, ‘성비 붕괴’라는 시장의 구조적 어려움을 든다. 모바일인덱스 데이팅 앱 월간활성사용자(MAU, 5월 기준) 집계에 따르면 아만다와 너랑나랑의 여성 비율은 각각 23%, 28%다. 데이팅 앱 시장 3강으로 불리는 위피·글램·틴더의 여성 MAU 비율도 올해 기준 20%대다. 플랫폼을 활성화하려면 성비가 어느정도 맞아야하는데, 기존 데이팅 앱의 경우 양적 성장에 집중하다보니 신뢰도가 떨어졌고, 여성 이용자들이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졌다. 데이팅 앱 내에서 사이버 스토킹, 신상 유출, 강력 범죄 피해 등에 노출되는 경우가 생기다보니, 성비는 더욱 불균형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데이팅 앱 시장의 도전자들은 이에 대한 해법으로 신뢰도 높이기에 나섰다. ‘믿을 수 있는 만남’을 새로운 방향성으로 내세운 것. 지난 5월 말 사람인이 출시한 데이팅 앱 ‘비긴즈’가 대표적이다. 본인인증과 페이스(얼굴)인증을 필수로 넣고, 56개 질문으로 구성한 연애성향검사 ‘블룸’을 통해 맞춤형 ‘연애 프로파일’도 제공한다. 노수현 사람인 비긴즈TFT 팀장은 “2030 세대 이용자들은 가볍고 단순하기만 한 기존 데이팅 앱 만남 방식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우리는 진정성 있는 만남을 실현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엔 독서 기록 공유 기반 데이팅 앱 북블라가 출시되는가 하면, 최근엔 일본에서 성공을 거둔 가치관 중심 데이팅 앱 페어즈도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자극적 사진 위주 가벼운 만남에서 탈피하겠다는 흐름도 생겨나고 있다. 2022년 10월 서비스를 시작한 윌유, 2023년 2월 출시된 데이팅 앱 내친소 등은 기존 데이팅 앱과 다른 접근법을 취한다. 윌유는 자기소개 프로필에서 질문마다 평균 60자 수준의 답변을 작성하게 했다. 그리고 질문 중간중간 사진을 한 장씩 배치했다. 윌유 운영사 라이프오아시스의 이승아 프로덕트오너(PO)는 “긴 답변 글을 읽다 보면 그 사람에 대해 더 잘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을 그 사이에 넣은 건 억지로라도 자기소개를 읽어보도록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초기 반응은 긍정적이다.

김경진 기자
윌유 매출은 2023년 대비 지난해 393% 성장했다. 내친소에서는 모든 이용자가 닉네임이 아닌 실명을 쓴다. 앱 내 인증 옵션의 하나로 ‘지인 추천사’를 뒀는데, 이용자가 지인들로부터 객관적인 평가를 수집하게 해 서비스 전반의 신뢰도를 키운다는 전략이다. 추천사 자체가 바이럴 요소가 돼, 추천사를 써주는 사람도 앱에 가입(유입율 약 70%)하는 효과도 있다. 내친소 운영사 리트리버살롱의 차제은 대표는 “음지화 돼있던 데이팅 앱을 바깥으로 꺼내겠다는 게 전략”이라고 말했다.

사진을 뺀 서비스도 있다. 2022년 11월 출시된 스위터에는 이용자 사진이 한 장도 들어가지 않는다. 이용자는 앱 가입 직후 AI 챗봇과 대화하면서 100개 이상 질문에 답변한다. 그 대화를 통해 AI 챗봇이 이용자 가치관을 학습하고 나면, 그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이성을 찾아 매칭해준다. 매칭이 성사되면 AI가 만남 약속을 잡아 준다. 스위터 운영사 어바웃미팅의 서영운 대표는 “만남을 성사시키는 데 초점을 뒀다. AI 추천만 믿고 일단 만나 본 이용자들이 ‘정말 나랑 잘 맞네’ 하는 확신을 얻고 나면 더 믿고 재방문한다”고 말했다. 만남 이후엔 이용자가 상대를 평가하도록 하고 AI가 그 결과를 모아 컨설팅해주는 ‘매력 보고서’도 제작해준다. 서 대표는 “언젠가 사진을 올릴 수 있게 하더라도 이용자들끼리는 서로 사진을 보지 못하게 할 생각”이라며 “AI가 올라온 사진의 외모 특성을 벡터 값(숫자)으로 저장해뒀다가, 이성 이용자들 이상형 기준에 꼭 맞는 사람을 찾아내 추천하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존 데이팅 앱도 이 같은 흐름에 올라타고 있다. 남성 이용자의 직장이나 학력 등을 인증하게 해 허들을 높여 남녀 성비를 5대5 수준으로 맞춘 스카이피플·골드스푼, 남녀 이용자 모두에게 직장 인증을 요구한 블릿(팀블라인드 운영) 등이 그렇다. 데이팅 앱 1위 업체 위피도 지난해 11월 패스(PASS) 인증을 의무화했다. 도입 직후 신규 가입자가 15% 가량 줄었지만, 반년 만에 예전 수준을 회복했다. 글램도 얼굴·직장·학교·나이(PASS) 등 인증을 추가했다.

김경진 기자
해외 시장에서도 이 같은 흐름은 이어지고 있다. 미국 매치그룹 산하 데이팅 앱 힌지(Hinge)는 ‘삭제되기 위해 디자인된 앱(Designed to be deleted)’ 전략을 쓴다. 사용자들이 의미 있는 관계를 찾은 뒤 앱을 삭제하도록 독려하는 식이다. 사용자의 기본 정보, 답변, 정치적 견해, 종교, 자녀 계획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가장 호환성이 높은 상대를 추천한다. 프랑스 앱 타임레프트(Timeleft)는 매주 수요일마다 6명의 낯선 사람을 매칭해 저녁 식사 모임을 주선한다. 가입 당시 성격 및 가치관 등 테스트를 완료하면 알고리즘이 언어, 성별 균형, 특성, 나이 등을 고려해 팀을 짠다. 이용자들은 사전에 상대 프로필이나 개인정보를 전혀 모르는 상태로 낯선 식당에서 만난다. 그룹 식사 뒤엔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선택해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게 한다.

전략을 정비한 국내 데이팅 앱들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일본(글램·위피·윌유·골드스푼), 대만(윌유), 미국(글램·스위터) 등에 진출했거나 진출할 예정이다. 결혼 시장으로도 영역을 넓히고 있다. 위피는 지난 4월 결혼정보회사 노블리에와 파트너십을 맺고 위피 고객에게 노블리에 가입비 혜택 지원 등을 시작했다. 같은 시기 글램도 결혼정보회사 가연과 손을 잡았다. 데이터와 기술을 앞세워 결혼정보회사 사업 영역을 흡수하겠다는 구상도 업계에서 나온다.

AI 챗봇도 데이팅 앱의 새로운 사업영역으로 꼽힌다. 과거 데이팅 앱 투자에 참여했던 박상호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전무는 “AI 캐릭터와 사람을 연결하는 분야에서도 새로운 사업 영역이 열릴 수 있다”며 “이용자가 캐릭터 챗봇과 대화를 통해 데이팅 기술을 먼저 트레이닝하게 하고, 이후 실제 사람을 만나보라는 식의 구조를 짤 수 있다”고 말했다. 처음 본 남녀가 상대방을 파악하기 위해 의례적으로 나누는 질문 답변을 각자의 AI 비서들이 주고 받도록 하는 아이디어도 있다. 차제은 대표는 “이용자는 AI 비서들 간 대화를 지켜보고 있다가 실제 매칭 선택 여부만 최종 판단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용환([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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