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명·파주 등에서 낮 최고 기온이 자동 기상 관측 장비(AWS) 기록으로 40도를 돌파하는 등 폭염이 전국을 휩쓸면서 가축들의 집단 폐사가 이어지고 있다. 축산 농가와 지자체는 뒤늦게 선풍기와 안개분사기 설치에 나서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갑작스러운 폭염 피해에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전라남도 나주시에서 오리농가를 운영 중인 임종근(58)씨는 “34년 농가 인생 중 올여름이 가장 더위가 빨리 찾아온 것 같다”며 “매년 여름마다 폐사가 발생하긴 하지만 평년보다 3주 가까이 당겨졌다. 예상치 못한 더위다보니 선풍기를 24시간 돌리고 안개분사기도 설치해봤지만 속수무책”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오리 6만 마리 가량을 기르고 있는 임씨는 출하 직전 3500마리가 폐사해 큰 손실을 입었다고 한다. 나주 지역 오리농가에 따르면 폭염 시작일이 3주가량 당겨지면서 나주 지역에서만 5~6만 마리에 달하는 오리가 이미 폐사됐다.
폐사를 면한 농가들도 다가오는 더위에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경기도 포천시에서 닭농장을 운영하는 A씨는 “양계장 온도가 38도를 넘어서 닭들이 많이 힘들어한다”며 “올해는 선풍기도 설치했다. 우리는 넓은 목초지에서 방목형으로 길러서 폐사는 면하지만 닭들이 많이 힘들어해서 앞으로가 걱정이다. 케이지형으로 운영되는 양계장들은 이미 폐사가 많이 발생한 걸로 안다”고 했다.
충남 천안에서 메추리농장을 관리하는 신모(70대)씨도 “날이 더워 평소 우리에 30마리 넣던 걸 18~20마리로 줄였다”며 “그런데도 메추리들이 더위를 먹어서 사료를 안 먹는 바람에 메추리알 수급이 줄었다. 하루에 70박스 나오던 게 지금은 50박스 언저리밖에 안 나온다. 에어컨을 풀로 가동하고 천장에 물도 뿌리고 있다”고 전했다.
8일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이 공개한 ‘국민 안전관리 일일 상황’에 따르면 5월 20일부터 전날까지 폭염 등으로 폐사된 가축은 13만 7382마리다. 전년 동기 대비 4만 5812마리(약 50.0%) 늘어난 수다. 폐사한 가축 대부분은 가금류(12만6791마리)다.
전문가들은 해마다 폭염 피해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현대식 축사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잡을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재홍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축사 내 공기 순환 장치를 마련하고 천장에 물을 뿌리거나 자동 분무기를 가동해 실내 온도를 낮추는 게 최선”이라며 “근본적으로는 외부 열기를 차단하는 시스템을 갖춘 최신 축사로 대체하는 게 폭염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방안”이라고 제안했다.
8일 기상청에 따르면 서울의 낮 최고기온은 공식 기상 관측소 기록으로 37.9도까지 치솟았다. 기상청이 근대적인 관측을 시작한 86년 만의 7월 상순 기온으로 최고치다. 자동 기상 관측 장비(AWS) 기록으론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의 최고기온은 40.2도, 파주시 광탄면은 40.1도를 기록했다. 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최고기온이 39.6도까지 올랐다. 이에 기상청은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를 발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