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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전 'AI 국가전략' 中처럼…"정부가 수요 일으켜야 韓기업 큰다"[창간기획-평화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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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8 13:00 2025.07.0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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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AI혁명 현장을 가다〈하〉

지난 4월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K-휴머노이드 연합 출범식에 전시된 휴머노이드 로봇.  왼쪽부터 로브로스, 블루로빈, 에이로봇, 레인보우로보틱스의 휴머노이드. 뉴스1
경기도 안산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내 창업보육센터 4층은 요즘 화장품 회사 공장 모습으로 변신 중이다. 이곳에 입주한 휴머노이드 스타트업 에이로봇이 올해 안으로 실제 안산공단 화장품회사 공장에 들어가 현장 검증(POC, Proof of Concept)을 위한 사전작업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공병에 화장품을 담고, 포장하는 작업을 인공지능(AI)을 통해 학습하는 게 핵심이다. 에이로봇은 한양대 로봇공학과 한재권 교수가 창업한 회사다. 국내에 완성형 휴머노이드를 만드는 곳은 에이로봇 외에 레인보우로보틱스와 로보티즈 3개사가 있다. 지난 4월엔 이들 3개사와 로봇 부품을 만드는 기업 등 40개사로 구성된 ‘K휴머노이드 연합’이 출범했다.

경기도 성남 정자동 킨스타워 14층엔 ‘제조산업 AI예측 솔루션’을 개발하는 인이지가 입주해 있다. 최재식 KAIST 인공지능대학원 교수가 2019년 창업한 스타트업이다. 포스코와 같은 철강회사나 시멘트·석유화학기업 등의 공정 데이터와 AI를 활용해 생산 효율성을 높여주는 게 주요 비즈니스 모델이다. 인이지는 지난 3월 기술력을 인정 받아 정부가 지정하는 ‘국가전략기술’ 보유 기업이 됐다.


국내에도 AI 기업이 성장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거대언어모델(LMM)을 개발해 내놓고 있다. LG의 엑사원, 네이버의 클로바엑스, 솔트룩스 루시아 등이 그것이다. 에이로봇과 인이지는 대표적 AIx 기업이다. AIx는 AI가 다양한 영역과 융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화 오디세이 2025 방문단이 찾은 항저우의 브레인코·딥로보틱스 등이 그런 곳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한국 휴머노이드의 경우 중국과의 격차가 9개월, LLM은 1.5년 정도로 분석된다.


한국의 AI 역량은 프랑스 다음인 세계 6위 수준으로 평가된다. 적어도 지난해 평가까지는 그렇다. 영국 토터스 미디어는 매년 국가별 AI 역량을 평가하는 ‘글로벌 AI 인덱스’를 발표하는데, 이에 따르면 세계 1위는 단연 미국이다. 평가는 크게 ①구현 ②혁신 ③투자, 이렇게 3개 부문으로 구분한다. 구현에는 인재·인프라·운영환경을, 혁신에는 연구개발을, 투자는 정부의 전략과 상업 생태계로 세분된다. 지난해 9월 발표된 2024 글로벌 AI인덱스에 따르면 미국을 100점(1위)으로 보고, 중국이 미국의 절반 수준인 53.88점으로 2위를 기록했다. 3위는 싱가포르(32.33점), 4위 영국(29.85점), 5위 프랑스(23.09점), 6위 한국(27.26점) 순이다.


미국은 인공지능의 기본이 되는 LLM만 해도 챗GPT(오픈AI)·제미나이(구글)·코파일럿(마이크로소프트)·라마(메타) 등 40개가 넘는다. 전 세계 AI 기업의 73%가 미국에 몰려 있다. 이는 그간 AI 연구와 개발에 막대한 자금이 투자된 덕분이다. 2위 중국은 올 한 해 예상되는 AI 투자는 미국의 4분의 1 수준에 달한다. AI 모델이 15개로 미국에 못미치지만, 지난 1월 딥시크가 세계 최초로 추론형 AI R1을 오픈소스 방식으로 공개하면서 미국 중심의 글로벌 AI 생태계 공략에 도전하고 있다. 중국의 장점은 AI 투자 규모와 비교해 AI 산업 집중도가 높다는 점이다. 또 AI 관련 논문 수는 미국과 같거나 일부 지표에선 미국을 넘어서고 있다.


이경일 솔트룩스 대표는 “중국은 2017년 바둑 세계 랭킹 1위인 커제 9단이 저장성에서 열린 대회에서 알파고에 3대0으로 전패한 뒤 국가 차원에서 ‘신세대 인공지능 발전계획’을 발표하면서 AI를 국가 전략으로 육성하기 시작했다”며 “딥시크 등 항저우 6소룡과 같은 AI 기업들은 그간의 집중투자가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도 2016년 3월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 이후 AI 각성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이듬해 과기정통부가 AI R&D 로드맵을 수립하고, 인공지능 국가전략 프로젝트를 본격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2019년 하반기에 인공지능 정책국이 처음으로 생겨났다. 하지만 14억 인구를 가진 사회주의 국가 중국의 물량과 속도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다. KAIST가 세계 대학별 AI 순위에서 5위를 할 정도로 R&D 능력이 높지만, 그래픽처리장치(GPU) 부족 등으로 기술 상용화가 이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는 “혁신기술 기반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공공부문에서 수요를 적극적으로 일으켜줘야 한다”며 “2019년 정부가 혁신제품의 선도적인 구매자가 돼 기술 혁신을 촉진하고 공급 서비스 개선에 기여하는 ‘혁신 조달’ 제도가 도입됐지만, 실제 시장에서 집행되는 것은 피부로 느끼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조달청은 지난달 10일 혁신제품 조달 규제를 완화하고, 조달 기업의 기술 혁신과 성장을 돕는 방향으로 ‘혁신 제품 구매 운영 규정’을 새롭게 시행했다고 밝혔다.

류제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은 “우리나라는 AI 양대 강국과 차이가 많은 게 현실이지만 핵심 자원인 GPU와 인재·데이터를 신속하게 확충해 세계적 수준의 독자 AI모델을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 산업과 공공 분야에 AI 대전환을 촉진함으로써 AI 3대 강국으로의 도약을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김동호.최준호.이가람.유상철.한우덕.신경진.이도성([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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