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제품은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어 과학기술 혁신의 의의와 가치를 잘 보여줬다. 기업이 제품의 연구개발과 응용에 더욱 힘을 써 국민에게 봉사하길 희망한다.”
리창(李强) 중국 국무원 총리가 2023년 10월 9일 항저우를 찾아 인공지능(AI) 의수를 만드는 브레인코의 한비청(韓璧丞) 대표를 격려하며 한 말이다. 리 총리는 현장에서 AI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 결과가 지난해 정부업무보고에서 발표한 AI 플러스 전략이다. 실생활에 밀착한 AI 기업의 창업을 독려하는 진군의 나팔 소리였다.
올해 1월 20일 리 총리는 다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맞춰 량원펑(梁文鋒) 딥시크 창업자, 런사오보(任少波) 저장대 당 서기 등을 중난하이로 초대했다. 올해 정부업무보고의 초안을 검토하는 전문가 좌담회였다. AI 최전선에서 인재를 키우고 기술을 개발하는 전문가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국정 책임자에게 전달됐다. 관영 매체는 이날 규제보다 도전을 강조하는 유연한 정책과 세계 일류의 기업 환경 조성 방안이 논의됐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딥시크는 알고리즘의 혁신을 자랑하는 R1 모델을 발표하며 총리에게 화답했다. 이 여파로 시장에서는 세계 1위 그래픽처리장치(GPU) 제조사인 엔비디아의 주가가 휘청거렸다. AI 플러스 전략을 발표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딥시크 모멘트’로 결실을 본 순간이다. 배후에 중앙과 지방 정부, 혁신기업, 대학이 한 몸처럼 움직인 산·관·학 삼각 연대가 있었다. 중국의 AI 플러스 전략은 계속 진화 중이다. 리 총리는 올해 3월 정부업무보고에서 '구신지능(具身智能)'이라며 ‘피지컬 AI’를 강조했다.
전략적 신흥산업의 융합 발전과 클러스터 발전을 내세우면서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과 인공지능을 비빔밥처럼 비볐다. AI 기술을 물리적 세계에서 구현하는 ‘피지컬 AI’를 바이오, 퀀텀(양자), 6G와 동급으로 육성하겠다고 했다. ‘평화 오디세이’가 상하이와 항저우에서 확인한 브레인코, 딥로보틱스 등 피지컬 AI 기업의 제품은 이미 세계를 선도하고 있었다.
딥시크를 탄생시킨 ‘항저우 모델’은 전 중국으로 퍼지고 있다. 최신 분석서 『항저우 모델』의 저자 류뎬(劉典) 푸단대 연구원은 “항저우시 정부의 핵심 이념은 ‘일이 없으면 괴롭히지 않고, 일이 생기면 반드시 대응한다(無事不優 有事必應)’는 서비스형 정부”라고 요약했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2019년 500만 위안(약 9억5000만원)이던 항저우 AI타운의 입주지원금이 지금은 3000만 위안(약 57억원)으로 6배 늘었다”며 “AI 창업이 넘쳐나고 인재가 항저우로 몰리는 이유”라고 정부의 통 큰 지원을 평가했다. 4족 로봇을 만드는 한비청 브레인코 대표는 아무 연고도 없던 항저우에 둥지를 튼 첫째 이유로 정부의 문턱 낮은 지원을 꼽았다. 둘째는 AI 기업의 밀집 효과라고 했다. 항저우 AI타운의 관계자는 “코로나19 직전 400개사였던 입주사가 지금은 1만 개를 넘어섰다”고 했다.
인내 자본으로 불리는 장기 투자도 중국 AI 굴기의 중요한 토대가 됐다.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는 “중국은 이미 2016년에 수립한 13차 5개년 경제개발계획에서 신흥 영역인 AI 기술에서 중요한 돌파를 이루겠다고 일찌감치 명시했고, 2020년 14차 5개년 계획에서 AI 언급 회수는 여섯 차례로 부쩍 늘었다”며 “대담한 목표를 남들보다 빨리 세우고 국가적 자원을 오랜 기간 투입하는 ‘시간의 리더십’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항저우 모델은 알리바바로 대표되는 전자상거래 기업이 AI 산업의 주역으로 변신하는 업그레이드에 성공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 모델이 극단적인 자유시장 논리를 바탕으로 했다면, 항저우 모델은 서비스형 정부와 혁신적 기업이 화학적으로 결합하는 온실형 혁신을 추구한다. 또 하드웨어를 우선한 ‘선전 모델’과 달리 시장·정부·사회가 만들어낸 ‘항저우 모델’은 AI 산업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즉 투명한 정보와 공평한 규칙으로 자원 배분의 효율을 높이는 유효 시장, 정확한 정책과 혁신형 서비스로 시장의 빈틈을 메우는 일하는 정부, 컨센서스와 사회적 신뢰로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촉진하는 유기적인 사회가 항저우 모델의 3대 기둥이라는 설명이다.
자오청(趙承) 저장성 선전부장은 평화 오디세이 방문단을 환영하며 “중국 500대 민영기업 중 106개사가 저장성에 있을 정도로 기업 친화적”이라며 “디지털경제, 신에너지, 인공지능 등 플랫폼 프로젝트에서 한·중 양국의 협력을 개척하자”고 제안했다.
화웨이 롄추후 R&D 센터를 유치한 상하이도 항저우에 지지 않을 기세다. 지난 7일 열린 상하이 시당 12기 7차 전체회의는 “집적회로, 바이오 의약, 인공지능 등 3대 선도산업의 발전과 확장을 가속화하겠다”며 글로벌 과학기술혁신센터 건설을 결의했다.
상하이는 AI 인재 유치를 유독 강조했다. 상하이 당 기관지인 해방일보는 8일 “‘경쟁을 통한 인재 유치’ ‘발로 뛰는 인재 유치’ ‘정책을 통한 인재 유치’를 심화하고, 천하의 영재를 모아 혁신 기업의 경쟁을 촉진해야 한다”며 전날 회의를 요약했다. 신정승 전 주중대사는 “중국은 항저우·상하이·선전·허페이 등 대도시마다 독특한 혁신 모델을 만들어 경합하고 실제 성과로 지도자가 평가받는 구조”라며 “중국 지도자들의 과학기술 리더십을 이제 한국 정치가 철저히 분석하고 배워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