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에 대한 관세를 빠르면 이달 말 공표할 것임을 예고했다. 구리 관세는 50%를 적용해 8월 1일 부과할 거라고 했고, 의약품 관세로 200%를 예시하기도 했다. 전날 한국과 일본(각각 25%) 등 14개국에 보내는 ‘상호관세 서한’을 공개한 데 이어 이번에는 품목별 관세로 전선을 넓혀가며 각국에 대한 협상 압박 강도를 높이는 모습이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 부과일이 더는 연장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전날 8월 1일로 공표한 관세 부과 계획에 대해 “100% 확고하다고는 하지 않겠다”며 변경 가능성을 시사한 데서 하루 만에 달라진 태도였다. 상호관세를 다시 유예하면서 ‘타코’(TACO·Trump Always Chickens Out·트럼프는 항상 겁먹고 물러선다) 이미지가 계속 덧씌워지는 데 대한 반작용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발효 시점을 8월 1일로 일괄 연기한 것은 무역 협상 시간 확보를 원하는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 등 참모진의 요청 때문이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은 주말인 지난 5∼6일 뉴저지주에 있는 자신의 골프클럽에서 측근들과 전화 통화, 비공개 대화 등으로 관세 문제를 논의했다”며 “(그때) '일부 합의가 가까워졌지만,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베선트 장관의 말을 들은 뒤 상호관세 부과를 연기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날 백악관 각료회의를 주재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어조는 시종 강경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생산설비를 갖춘 외국 업체들이 과거 행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미국을 떠나갔다고 주장하며 “나는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의약품, 반도체, 그리고 몇몇 다른 주요 분야에 대한 (관세) 조치를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약품 관세와 관련해 그는 “우리는 사람들에게 (미국으로) 들어올 시간을 1년이나 1년 반 정도 줄 것이며, 그 이후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며 “매운 높은 관세율, 가령 200% 정도가 부과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구리 관세를 50%로 할 것이라고 했다. 이는 철강·알루미늄에 적용되고 있는 관세율 50%와 같은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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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 관세, 이달 말 또는 8월 1일 발효”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의약품·반도체·구리는 미국이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관세 부과를 검토하는 품목들이다. 이 조항은 특정 품목의 수입이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될 경우 상무부 장관이 이를 조사하고 위험 완화 방안이 들어간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제출하면 대통령이 90일 이내 관세를 통한 수입 규제 등 적절한 조치를 결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관련,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이날 CNBC 인터뷰에서 “구리에 대한 조사를 마쳤고 결과를 대통령에게 넘겼다”고 했다. 그는 해당 조치가 일반적인 법적 절차를 거쳐 1~2일 내 완료되면 트럼프 대통령이 구리 관세 관련 포고문에 서명할 것”이라며 구리 관세는 7월 말이나 8월 1일 발효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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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조사, 이달 말 완료 예정”
러트닉 장관은 의약품과 반도체의 경우 국가안보 영향 관련 조사를 이달 말 완료할 예정이라며, “그러면 대통령이 어떻게 할지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조사 완료 및 대통령 보고 시점을 이달 말까지라고 한 만큼 빠르면 이달 말 반도체 관세 부과 계획이 발표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한·일 등에 보내는 관세 서한에서 25%의 관세 부과 계획을 밝히며 협상 결과에 따라 조정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서도 “품목별 관세는 별개”라고 했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철강·알루미늄에는 50%, 자동차에 대해서는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이들 품목별 관세는 협상의 여지가 없다는 의미다. 여기에 반도체·의약품과 구리가 포함될 가능성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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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 관세, 공급망 우려에 선물가격 급등
한국의 대미 구리 수출량은 지난해 기준 5억7366만 달러(약 7880억 원) 규모로 전체 대미 수출액 대비 0.45%로 미미한 수준이다. 구리 관세 50%가 적용되더라도 한국에 미칠 직접적인 타격은 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전기·건설·정보기술(IT) 분야 핵심 물질인 구리에 고율 관세가 부과되면 공급망 불안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소식이 전해진 뒤 구리 선물 가격(종가)은 전날 대비 13.1% 올라 하루 상승률 기준 198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구리 관세 50%가 현실화할 경우 수입산 정제 구리에 상당 부분 의존하는 미국 공장들이 타격을 받을 거란 예상도 나온다. 미 지질조사국(USCG)에 따르면 미국은 매년 소비하는 정제 구리의 절반 정도인 약 100만t을 수입하는데 90% 이상이 칠레산·캐나다산·페루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