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을 국빈방문중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유럽은 미국과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마크롱은 찰스 3세 국왕의 초청으로 이날부터 사흘간 영국 국빈방문에 나섰다. 마크롱은 2020년 1월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공식 탈퇴(브렉시트)한 이후 처음으로 영국을 국빈방문한 EU정상이다. 프랑스 대통령으로선 2008년 3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이후 약 17년만의 국빈방문이다.
마크롱은 첫날인 8일 오후 영국 의회건물인 웨스터민스터궁을 찾아 상ㆍ하원 의원들 앞에서 연설했다. 그는 우선 “양국이 유럽 안보에 대해 특별한 책임을 지고 있다”며 “중요한 것은 더 큰 범위에서 유럽의 안보를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이라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그동안 주장해 온 유럽 자강론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러시아의 팽창과 미국의 ‘아메리카 퍼스트’에 맞서 프랑스와 영국이 하나의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는 마크롱 노력의 일환”이라고 평가했다.
이와함께 마크롱은 “유럽은 미국과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마크롱은 “한쪽(중국)에서는 그들의 보조금과 다른 역량이 공정 무역을 위협하고, 다른 한쪽(미국)은 무역전쟁을 통해 우리가 소중히 여긴 무역 규범을 따르지 않겠다는 명확한 결정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미·중에 대한 무역 의존도를 낮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마크롱은 또한 “프랑스와 영국은 불법 이민을 인도주의, 연대, 확고함으로 해결할 공동의 책임을 가지고 있다”며 불법 이민문제 해결에 함께 나설 것이라고도 약속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불법 이주민 유입 급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 해협을 통해 건너온 불법 체류자를 프랑스에 송환할 때마다, 프랑스로부터 영국에 가족을 둔 이주민을 ‘일대 일’로 받아들이는 이민제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마크롱은 아울러 양국 문화 교류 일환으로 초대형 자수 작품인 ‘바이유(Bayeux) 태피스트리’가 900년 만에 프랑스 땅을 벗어나 내년 9월부터 영국 대영박물관에 전시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11세기에 제작된 이 작품은 프랑스 노르망디 출신 윌리엄 1세가 잉글랜드를 정복하고 영국에 노르만 왕조를 설립하기까지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마크롱은 “이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는 데 브렉시트 문서보다 시간이 더 걸린 것 같다”고 농담했다. 그는 이날 연설을 “영국 만세, 프랑스 만세”라는 말로 마무리했다.
앞서 이날 오전 영국 공군기지에 도착한 마크롱 부부는 마중 나온 윌리엄 영국 왕세자 부부로부터 환영 인사를 받았다. 오찬 장소인 윈저성에서는 찰스 3세 국왕 부부와 왕실 마차에 올라 근위대를 사열했다. 왕실로서도 2022년 9월에 즉위한 찰스 3세가 처음 맞이하는 국빈방문인 만큼 최고의 예우를 갖췄다는 평가다. 찰스 3세는 이날 윈저성에서 국빈만찬도 주최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9일 스타머 영국 총리와 양자 회담을 갖는다. 10일에도 양 정상은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의지의 연합’ 참여 회원국들과 화상 회의를 주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