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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타죽어요"…마른장마 강릉, 저수율 25% 땐 생활용수 제한

중앙일보

2025.07.08 22:44 2025.07.08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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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강원 강릉시 성산면 오봉저수지 수위가 낮아지며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뉴스1]
“비가 오지 않아 옥수수, 감자는 바짝 말랐고 깨는 심지도 못했습니다.”

지난 8일 오후 강원 강릉시 성산면 오봉리 한 밭에서 유봉열(71)씨는 뜨거운 햇볕에 말라가는 옥수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3300㎡(1000평) 규모의 밭에 옥수수와 감자를 심었다.

유씨는 “비가 안 와 저수지에도 물이 부족해 농작물이 말라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며 “올해 밭작물 수확은 물 건너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유씨가 사는 오봉리엔 74가구 농가가 있는데 농민 대부분이 물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이 마을 용수원인 오봉저수지는 바싹 마른 상태다. 물이 유입되는 왕산 쪽은 황톳빛 바닥이 그대로 드러났고 저수지 중ㆍ상류 부분은 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이 저수지 저수율은 9일 기준 30.9%(442만7700t) 수준에 불과하다.

폭염으로 인한 가뭄이 이어진 지난 8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하논분화구 내 논바닥이 쩍쩍 갈라져 있다. [연합뉴스]


농업용수 이틀 급수 후 사흘 단수

오봉저수지는 강릉지역 생활ㆍ농업용수의 90% 정도를 공급한다. 물이 부족하지 않을 땐 매일 생활ㆍ농업용수를 각 10만t씩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달 초부터 오봉저수지의 농업용수 공급이 대폭 줄였다. 6월엔 이틀 급수하면 이틀은 단수했다. 7월부턴 이틀 급수에 사흘 단수로 공급량을 더 축소했다.

농어촌공사 강릉지사 측은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이 25% 이하로 떨어지면 강릉지역 생활용수 제한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인열 농어촌공사 강릉지사 오봉 지소장은 “지금처럼 비가 오지 않고 무더위가 계속된다면 일주일 뒤 저수율이 25%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매년 반복되는 물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선 식수 전용댐 등 대체 시설 건설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마른장마에 강원 동해안 지자체의 식수원과 농업용수원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농촌용수종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날 현재 도내 80개 저수지의 저수율은 49.5%로 지난해 64.2%, 평년의 68.4%보다 낮은 수준이다.

폭염이 계속된 지난 8일 경북 고령군 다산면 한 밭이 메말라 갈라진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농민이 잡초 뽑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릉 6월 이후 내린 비 18.5㎜

더욱이 강릉(11곳)은 34.1%, 속초(2곳) 23.8%, 삼척(3곳) 29.2%, 고성(5곳) 35.3%, 양양(2곳) 35.1% 수준으로 동해안 지역은 도내 평균보다 매우 낮은 수준이다.

동해안의 경우 본격적인 피서철이 시작되면서 물 사용이 많아지는데 가뭄이 겹쳐 피서객 수용에도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특히 강릉은 올해 들어 7월 현재까지 누적 강수량이 235㎜로 평년 471㎜ 대비 49%에 불과하다. 6월 이후 지금까지 총 18.5㎜의 비만 내렸다.

이에 따라 강릉시는 도심 고층 건물 지하에서 나오는 하루 4t가량의 용출수를 생활용수로 활용하기로 했다. 또 남대천 상류에 임시 취수보를 설치해 하루 1만t가량의 농업용수를 확보할 계획이다. 또 공공기관, 시민들이 참여하는 물 아껴 쓰기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김홍규 강릉시장은 “물 아껴 쓰기 캠페인은 전 시민이 동참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인 만큼 적극적으로 동참해 달라”고 당부했다.

전국에 연일 폭염 경보가 발효되는 등 역대급 가마솥 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지난 8일 오후 대전의 한 한우농가에서 주민이 폭염에 지친 소들에게 안개분무기를 가동하고 물을 뿌려주는 등 축사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제주 하논분화구 주변 논 쩍쩍 갈라져

제주 서귀포시 하논분화구 내 논바닥도 물이 없어 곳곳이 쩍쩍 갈라져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마르형 분화구인 하논분화구는 하루 1000∼5000L 이상의 용천수가 분출돼 논으로 쓰이는 땅이 많다. 하지만 올해는 수량이 적어 물을 대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단수 사태'로 홍역을 치른 경북 청도군도 긴장하고 있다. 상수도 사용량이 급증할 경우 고지대를 중심으로 한 단수 사태가 재현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청도군 풍각면과 각남면 일대 등 2400여 가구의 고지대 주민들은 지난해 8월 며칠 동안 수돗물을 사용하지 못해 큰 불편을 겪었다. 당시 폭염으로 인해 운문정수장 하루 최대 생산 가능 용량인 2만1000t보다 많은 양의 물을 주민들이 사용하면서 배수지의 수압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청도군은 단수 사태가 재발할 것에 대비해 2L 생수 20만병을 일단 확보했다. 또 관내 곳곳에 물을 절약하자는 내용의 현수막을 걸고 하루 2차례 이상 마을방송 등을 통해 절수 필요성도 알릴 방침이다. 현재 대구와 경북 경산, 청도 등의 취수원으로 활용되는 운문댐의 저수율은 38.3%로 예년(47.2%)보다 낮은 수준이다. 청도군 관계자는 “비슷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계도를 강화할 방침이다”고 말했다.

폭염이 계속된 지난 8일 경북 고령군 다산면 한 밭에서 농민이 잡초 뽑는 작업을 하다 땀을 닦아내고 있다. [연합뉴스]


폭염에 전국적으로 가축 11만9137마리 폐사

연일 이어지는 폭염을 견디지 못하고 가축이 폐사하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전남도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 전남 지역 118개 농가에서 닭 5만 3714마리, 오리 5003마리, 돼지 2201마리 등 가축 6만 918마리가 폐사했다. 농가 피해액만 10억 8300만원에 이른다. 이 중 1만 9823마리는 지난 8일 하루 만에 발생한 것으로 이번 여름 들어 가장 큰 피해다.

경남도의 경우도 지난달 16일부터 지난 8일까지 닭과 돼지, 오리 2만 236마리가 폭염으로 폐사했다. 이 중 닭 폐사량이 1만 4121마리(69.7%)로 가장 많았다. 전국적으로는 전남·충북·경남·경북 등 4개 도에서 닭과 돼지, 오리 등 가축 11만 9137마리가 폐사했다.

이에 따라 전국 각 지자체는 폭염으로 인한 축산농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여름철 축산재해 예방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박현식 전남도 농축산식품국장은 “기상청은 올해 7~8월 예상 기온을 평년보다 높을 것으로 내다봤다”며 “기후 변화로 가뭄과 폭염이 더욱 빈번하고 강해지는 만큼 농가에선 철저한 관리와 예방에 힘써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진호.최경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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