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은 자국의 방위비를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며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8일(현지시간) 꺼내 들었다. 전날 이재명 대통령을 수취인으로 지정해 “8월 1일부터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서한을 보낸 직후 나온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구리와 의약품을 시작으로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에 대한 품목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그러면서 “상호관세 부과일(다음달 1일)은 변경되지 않을 것”이라며 추가 유예 조치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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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얘기하다가…돌연 ‘한국 방위비’ 꺼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내각회의에서 “우리는 수십 년 동안 모든 국가와의 교역에서 적자를 기록했고, 나쁜 거래를 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돌연 한국의 방위비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는 한국을 재건하고 한국에 머물렀다”며 “우리는 사실상 무료로 군사 지원을 했지만, 그들(한국)은 매우 적은 금액을 지불했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우리는 한국에 4만5000명의 병력을 배치하고 독일에는 4만5000명, 사실은 5만2000명을 배치해 엄청난 경제적 발전을 이루게 했다”며 “그들에게는 엄청난 돈이지만 우리에게는 엄청난 손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많은 돈을 벌고 있고 매우 훌륭하지만, 이제 자신의 국방 비용을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 주한미군 주둔 비용 등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관세와 연계할 가능성을 시사한 말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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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된 ‘원스톱 쇼핑’…또 ‘100억 달러’ 요구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2019년 11차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협정(SMA) 협상 과정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나는 한국에 ‘1년에 100억 달러(약 13조7000억원)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며 “한국은 난리가 나 30억 달러(인상)에 동의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전화 한 통으로 30억 달러를 벌었고, 만족했다”며 “나는 ‘다음 해(2020년)엔 다시 협상해야 한다고 했지만, 부정선거(2020년 미 대선) 때문에 다시 협상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자신이 당선됐다면 방위비를 이미 100억 달러 이상으로 올렸을 거란 주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여러 차례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으로 칭하며 방위비 분담금 100억 달러를 내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또 한국과의 관세 협상에 대해선 무역과 안보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는 의미의 ‘원스톱 쇼핑’이 될 것이라고 공언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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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과 말 뒤집기…“의도적 부풀리기 가능성”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상당 부분이 과장됐거나 사실관계에 맞지 않는다. 당장 주한미군의 숫자는 4만5000명이 아닌 2만8000명 수준이다. 또 2019년 한국에 요구했던 방위비 분담금은 100억 달러가 아닌 50억 달러 인상이었다. 물론 추가 부담을 요구한 50억 달러 역시 당시 한국이 부담하고 있던 분담금(1조389억원)의 5배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이다.
주독미군에 대해서도 계속 입장이 달라지고 있다. 그는 집권 1기 때 주독미군을 2만5000명으로 줄이겠다고 했다가, 지난달 5일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선 4만5000명의 미군 병력에 대해 “독일 경제에 이득이고, 계속 그렇게 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또다시 한 달 만에 주독미군 유지에 대한 회의적 태도로 입장을 바꿨다.
이와 관련,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외 정치적 목적의 발언을 할 때마다 의도적으로 데이터를 부풀려왔다”며 “이날 발언 역시 한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의도”라고 했다. 그는 “특히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이날 정상회담 논의를 마치고 귀국하는 시점에 이러한 발언을 한 것은 전략적 계산이 반영된 것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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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코’ 논란에 “원래 8월 계획”…반도체 등 전방위 압박
트럼프 대통령은 실제 상호관세 부과를 지속적으로 유예하며 불거진 ‘타코(TACO·Trump Always Chickens Out·트럼프는 항상 겁먹고 물러선다)’ 논란에 적극 대응했다.
그는 “원래 (부과일이) 8월 1일이었고, 우리는 (날짜를) 변경한 적이 없다”며 “나는 설명을 했을 뿐 설명을 할 때마다 (부과일을) 변경했다고 주장한 것은 그들(언론)”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미국은 미국을 속이고 뒤에서 우리는 바보로 여기며 웃어대던 국가들로부터 돈을 걷기 시작할 때가 됐다”며 “의약품, 반도체, 몇몇 다른 것들(에 대한 관세)을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이중 반도체는 한국의 주력 수출품으로, 부과 시점과 관세율이 이르면 이달 중 결정될 가능성도 있다. 한국의 입장에선 협상에서 지켜야 할 대상이 더 늘어나는 부담을 안게 된다는 의미다. 이 밖에 구리에 대해선 철강과 알루미늄과 같은 50% 관세를 예고했고, 의약품에 대해선 1년에서 1년 반 뒤 200%의 관세를 물리겠다고 했다. 해당 관세의 발효 또는 발표 시기는 모두 이달 말로 맞췄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유럽연합(EU)이 빅테크 규제법을 근거로 구글과 애플 등 미국의 빅테크 기업에 부과한 과징금을 문제 삼으며 “근거 없이 유럽의 판사들이 내린 판결로 우리의 많은 돈을 빼앗아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같은 논리로 한국의 ‘온라인플랫폼법’을 비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