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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때문에 돈 잃어” 신종 ‘팀 미션’ 사기...계좌 동결 안돼 피해 확산

중앙일보

2025.07.09 01:02 2025.07.09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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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 질환으로 직장 생활이 어려웠던 30대 A씨는 최근 집에서 할 수 있는 부업을 하려다 2000만원을 날렸다. 인스타그램에 뜬 부업 광고를 누르니 네이버 라인 앱을 통해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익명 프로필이라 실제 누구인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는 처음엔 오전 10시~오후 9시까지 40분 간격으로 짧은 유튜브 영상을 시청해 조회 수를 올리는 업무를 줬다. 영상 시청을 인증하면 한 번에 500원~3000원씩 ‘SUVEXA’란 앱에 포인트가 쌓였고 2만원 이상이면 자신의 은행 계좌로 옮겨 인출도 할 수 있었다. 다음날부턴 수당이 올랐고, 이틀 만에 10만원이 생겼다.

셋째 날부터 유혹이 시작됐다. 원금의 30~40% 수익을 보장하는 ‘고수익 미션’에 참여하지 않으면 영상 시청 수당이 깎인다고 했다. 10만원을 이체하고 시키는 대로 했더니 정말 13만원을 돌려줬다. A를 포함한 여러 사람이 익명으로 참여한 대화방엔 자신의 수익을 인증하는 글들이 넘쳐났다. 이다음부턴 ‘팀 미션’을 해야 했다. 30만원부터 1000만원까지 같은 금액을 선택한 4명이 모여 공동 미션을 수행하는 식이다. 미션 실패 시 원금을 잃게 된다는 설명은 당연히 없었다.
30대 A씨가 당한 신종 '팀 미션' 사기 수법

담당자는 복잡한 지시를 내려 어떻게든 A씨의 실수를 유도했고, 팀원들은 “너 하나 때문에 모두가 돈을 잃었다” “이 정도 일도 못 하냐”고 가스라이팅(심리적 압박)을 했다. 인당 500만원의 원금 손실을 만회하려면 더 많은 돈을 내고 고난도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고 했다. A씨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줬다는 죄책감에 1500만원을 냈고 미션도 성공했지만, 이제는 수수료로 1800만원을 더 내야 원금과 수익금을 모두 인출할 수 있다고 했다. A씨는 불과 3시간 만에 전 재산을 잃었다.

불경기에 부업이라도 해보려는 서민들을 노린 민생 침해형 사이버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9일 경찰청에 따르면 팀 미션을 포함한 사이버사기 검거 건수는 지난해 11만2000건으로 전년(9만7000건) 대비 15.5% 증가했다. 금융감독원 집계 결과 고수익 알바 등을 미끼로 한 유사수신 신고ㆍ제보 건수도 지난해 410건으로 전년(328건) 대비 25%(82건) 늘었다. 수법도 정교해졌다. 경찰청 경제범죄수사과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팀 미션 사기 신고가 늘고 있다”며 “피해자를 제외한 팀원들은 대부분 사기범과 한패이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절대 속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

30대 A씨가 당한 신종 '팀 미션' 사기 수법.
팀 미션 사기의 경우 사기 이용 계좌를 즉각 동결할 수도 없다 보니 피해가 커지고 있다. 현재 전기통신금융사기피해환급법상 즉각적인 지급정지는 보이스피싱처럼 피해자를 속여 자금을 이체하게 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중고 거래 과정에서 계좌 동결이 악용되면 전자 상거래가 위축될 우려가 있는 만큼 ‘재화의 공급 또는 용역의 제공 등을 가장한 행위는 제외한다’는 규정을 뒀다. 팀 미션 사기는 부업의 형태를 가장하고 있어 여기에 해당한다. 정교한 수법으로 성긴 법망을 빠져나간 셈이다. 사기로 돈을 돌려받지 못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하는 피해자들에게 접근해서 선수금을 내면 해킹 등을 통해 돈을 받아준다는 사기 ‘솔루션 업체’까지 판을 치고 있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법적ㆍ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선 경찰은 보이스피싱처럼 팀 미션 사기 피해자들도 즉각적인 계좌 동결이 가능하도록 하는 ‘다중피해사기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김대근 한국형사ㆍ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 취약계층을 노린 사기범죄는 청년층의 사회 진입을 가로막고 노년층의 노후 빈곤을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피해와 파급이 강력범죄 못지않게 크다”며 “범행 이용 수단 차단을 위한 ‘의심거래계좌 이체 지연ㆍ일시정지’ ‘사기 위험 전화번호 이용중지’와 같은 조치가 신속히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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