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초 '마가'(MAGA) 진영의 대표적 인플루언서 로라 루머(32)가 백악관을 찾았다. 집무실 '오벌 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직접 만난 루머는 두꺼운 자료집을 들고 있었다.
그 자료에는 알렉스 웡 당시 백악관 수석 국가안보 부보좌관에 대한 정보도 포함돼 있었다. 웡과 그 배우자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하지 않으며 정치적 배경도 의심스럽다는 취지였다.
웡이 2012년 밋 롬니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 캠프에서 일했으며 그의 부인은 진보 성향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 밑에서 일했다는 자료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시됐다. 루머는 특히 웡의 부인이 1·6 의회폭동 가담자 기소에도 참여한 이력까지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루머는 이 외에도 웡 부부를 포함해 당시 트럼프 행정부에 속한 10여 명의 고위 참모들에 대해 유사한 방식으로 충성심 결여를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는 8일(현지시간) 루머가 대통령에게 이른바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한 직후 트럼프 대통령의 즉각적인 반응이 나왔다고 전했다.
NYT는 이 사건 이후 웡 부보좌관이 대북정책의 핵심 인물로 주목받던 와중에 전격 경질됐다고 보도했다. 루머가 의심을 제기한 인물 중 실제로 6명이 해임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프레젠테이션의 계기는 루머가 그 일주일 전 소셜미디어 엑스(X)에 올린 글이었다. 그는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참모진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게시물을 본 트럼프 대통령이 루머에게 전화를 걸어 백악관으로 초청했다고 NYT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NSC 인사 조치가 루머의 직접적인 영향 때문이라는 관측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백악관 또한 내부 인사 교체 작업이 프레젠테이션과 같은 시기에 진행됐을 뿐이며 루머가 자신의 영향력을 과장하고 있다고 NYT에 해명했다.
하지만 NYT는 루머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이는 백악관 전체에도 파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루머 본인도 트럼프 대통령과 한 달에 여러 차례 직접 통화한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나의 백악관 접촉 경로는 '도널드 트럼프'라며 '다른 사람들은 그게 그렇게 납득이 안 가는가 보다'"라고 말했다.
루머는 MAGA 지지층 내에서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고 불편한 대상을 향해 SNS상에서 즉각적인 공격에 나서는 특징 때문에 백악관 내부에서 '위험인물'로 경계 대상이 됐다고 NYT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들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루머와 관련한 사안에 대해 실명을 밝히기를 꺼렸다고 한다.
실제로 루머는 엑스에서 170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JD 밴스 부통령,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 등도 그를 팔로우하고 있다.
극우 성향의 루머는 자신을 '자랑스러운 이슬람 혐오자'라고 칭한다. 그는 8살 때 겪은 2001년 9·11 테러가 이슬람에 대한 인식의 계기가 됐다고 주장하지만, 미국 언론들은 그의 발언 다수가 사실과 무관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루머는 근거 없는 이슬람 혐오 발언으로 인해 한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에서 계정이 정지됐으나,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한 이후 계정이 복구되면서 영향력을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