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이 수입하는 구리에 5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자 구리 가격이 급등하며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8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9월 인도분 구리 선물 가격은 파운드당 5.8955 달러로 전 거래일 대비 최대 17%까지 치솟았다. 역대 최고치이자, 1969년 이후 하루 최대 상승 폭이다. 관세 시행 전 ‘사재기’ 움직임과 투기적 매수세가 겹친 결과로 풀이된다.
로이터 등은 “관세 부과는 어느 정도 예견돼 있었으나, 발표 시기는 갑작스러웠고 관세율도 시장 예상의 두 배였다”고 짚었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CNBC와 인터뷰에서 “구리 관세는 7월 말이나 8월 1일에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해 약 160만t의 정제 구리를 소비했다. 미국은 약 85만t의 구리를 국내에서 생산했지만 절반가량을 수입하고 있다. 칠레(38%)와 캐나다(28%)산 구리가 대부분이다. 한국산도 약 3%에 달한다. 앞서 백악관은 “풍부한 구리 매장량에도 제련·정제 능력은 세계 경쟁국보다 상당히 뒤처져 있다”며 국내 생산을 압박했다.
구리는 경기 흐름에 따라 가격이 변동해 ‘닥터 코퍼(경기를 알려주는 박사)’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이번 급등은 관세 부과 우려에 따른 것인 만큼, 미국 내 물가만 자극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에르 그라튼 캐나다 광업협회장은 “높은 관세는 미국 제조업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고 짚었다.
전기차·인공지능(AI)을 위한 전력 인프라 투자가 늘면서 구리 수요는 꾸준하다. 이번 관세 충격으로 구릿값이 더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글로벌 투자은행 번스타인은 “구리 재고가 미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구리 가격이 올 연말까지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앞서 골드만삭스와 JP모건 등은 올 2분기 평균 t당 8300달러에서 연말까지 1만 달러를 넘을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모건스탠리 분석가들은 미국 내 재고가 쌓이면 그 영향이 일부 완화될 수 있다고 전했다.
구릿값의 상승 폭이 커진다면 납기 지연이나 수출 차질 등으로 다국적 공급망에 타격을 줄 수 있다. 한국의 경우 미국·유럽 시장으로 초고압 변압기 수출을 늘리고 있는데, 구릿값이 계속 오를 경우 가격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문가들을 인용해 “인프라 구축이나 구리가 필요한 미국 기업들의 이익 마진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