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전보다 술을 좀 더 마신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는 알코올 중독으로 기울었다는 거다. 그거 끝내준다.”
남자 골프 세계 랭킹 3위 잰더 쇼플리(32)가 8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인근 르네상스 골프장에서 열린 PGA 투어 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디 오픈에서 우승한 후 당신의 인생이 얼마나 달라졌나. 압박감이 더 커졌나”라는 질문을 받고 한 답이다.
기자들은 그가 지난해 디 오픈 우승컵인 클라릿 저그에 와인과 테킬라를 부어 마셨다는 걸 기억하고 있다. 기자회견장이 웃음바다가 됐다.
기자 중 한 명이 “기사 제목을 만들어 줘서 고맙다”고 했다.
쇼플리는 PGA 투어에서 요즘 뜨는 개그맨이다. 인터뷰에서 매우 말을 아끼는 스타일이었는데 지난해 메이저 우승 후 숨겨놨던 개그 본능을 발휘하고 있다. 무표정한 얼굴로 유머러스한 멘트를 쏟아낸다. 자학 유머의 대가다. 자신의 과거 창피한 일들도 남 얘기하듯 태연히 말한다. 억지스럽거나 과장되지 않다. 농담식으로 얘기하면서도 팩트에 충실하다.
한참 진지한 얘기를 하다가 쇼플리는 또 한 번 기자들을 웃겼다.
-기자 “지난해엔 빅3 중 한 명이었는데 올해는 별로 거론되지 않았다. 로리 매킬로이와 스코티 셰플러의 최고 선수 경쟁 화두에 다시 들어가고 싶나”
-쇼플리 “잠자리에 들 때마다 ‘나에 대해서 기사를 써줘’라고 말하지 않은 날은 하루도 없다. 오늘은 화장실 앞에 내 사진이 걸린 걸 봐서 좋았다. 가슴이 훈훈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성적 부진)에 대한 내 생각을 잘 보여주는 사진이었다.”
또 폭소가 나왔다.
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 미디어 센터에는 역대 우승자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지난해 우승자 로버트 매킨타이어와 2023년 우승자 로리 매킬로이 등의 사진이다. 얄궂게도 화장실로 들어가는 길목에 2022년 우승자 쇼플러의 사진이 걸렸다. 미디어센터 담당자들이 뜨끔했을 것이다.
-쇼플리 “농담이다. 앞으로 10년 동안 저 자리에 그대로 둬도 된다.”
-기자 “알콜 중독과 화장실 중 어떤 제목이 더 나을 것 같나.”
-쇼플리 “기자들은 참 창의적이다. 기사가 어떻게 나오나 한번 보자.”
-사회자 “칭찬해 준 건 고맙다.”
-쇼플리 “(기사가 나올) 오늘 밤이 기대된다.”
쇼플리는 메이저 2승 포함 PGA 투어 9승을 거뒀다. 2020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하다. 올해는 갈비뼈 부상 여파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지난해 16번 든 톱10은 올해는 한 번(공동 8위) 뿐이다.
지난해 워낙 잘해 세계 랭킹은 3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페덱스컵 랭킹은 57위에 불과하다. 시즌 마지막 메이저인 디 오픈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해 그 대회가 그의 마지막 우승이다. 스트레스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쇼플리는 부진 속에서도 67경기 연속 컷통과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부상 후유증 속에서 웬만한 의지가 아니면 힘든 기록이다. 그의 아버지 슈테판 쇼플리는 독일 10종 경기 국가대표였다가 음주운전자의 교통사고로 다친 후 미국으로 건너가 골프 프로가 됐고 아들을 PGA 투어 선수로 키워냈다.
독일인 특유의 근면성과 절제력을 아들에게 가르쳤다. 잰더는 알렉산더의 약자다.
쇼플리는 “내 사진을 화장실에서 옮길 수만 있다면 정말 멋질 거다”라고 말했다. 농담이라고 했지만, 그는 진담을 농담 식으로 말하는 선수다. 기자들은 다들 성실하고 진솔하면서도 재미있는 그를 응원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