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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의 마켓 나우] 경제 포퓰리즘은 금융위기를 각오해야 한다

중앙일보

2025.07.09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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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 미국 퍼먼대 경영학 교수·『페드시그널』 저자
2000년 11월 7일 미국 대선은 박빙 승부였다.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는 선거인단 271명을 확보해 앨 고어 민주당 후보를 단 5표 차로 물리쳤다. 전체 득표수에서는 고어 후보가 오히려 55만 표 앞섰다.

승패를 가른 것은 25명의 선거인단이 걸린 핵심 경합 주 플로리다였다. 유권자 수 600만의 플로리다에서 부시 후보는 단 537표를 앞섰다. 민주당은 수작업 재검표를 요구했다. 선거 결과 확정이 한 달 넘게 지연됐다.

12월 12일 연방 대법원이 재검표 중지 결정을 내리고서야 차기 대통령이 정해졌다. 2001년 힘겹게 집권한 부시 대통령의 출발은 험난했다. 닷컴 버블이 터지자 나스닥 주가지수는 고점 대비 50% 넘게 하락했다.

설상가상으로 9·11 테러가 발생했다. 뉴욕의 랜드마크인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 내렸다. 부시는 비장하게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2001년 말에는 대형 회계 스캔들이 터졌다. 포천 500 기업 가운데 매출 7위인 엔론이 파산했다. 2004년 재선을 앞둔 부시에게는 정치적 돌파구가 필요했다. 공화당에 냉담한 히스패닉과 흑인 유권자의 지지가 간절했다.

부시는 ‘아메리칸 드림 청사진’을 마련해 저소득층의 내 집 마련 꿈을 돕겠다고 선언했다. 저소득층, 특히 소수인종 가구를 대상으로 10년 안에 550만 호의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는 주택시장에 대한 대규모 규제 완화에 착수했다.

주택담보대출을 받기 위해 필요한 현금인 다운페이먼트를 제공하고 각종 세제 지원을 늘렸다. 모기지 금융에 대한 감독과 규제도 축소했다. 백악관이 분위기를 조성하자 공기업과 금융기관도 저소득층 대상 대출 확대에 동참했다.

은행은 소득·직업·자산을 묻지 않는다는 닌자(no income, no job, no assets, NINJA) 대출을 난발했다. 주택업자는 새집 짓기에 나섰고 가계는 카드빚까지 동원해 주택 투기에 뛰어들었다. 월가는 모기지 파생상품을 만들어 돈 벌기에 몰두했다.

2004년 주택보유율은 사상 최고치로 치솟고 부시는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인상하고 대출 연체가 늘어나자 위험 감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2008년 서브프라임 금융위기로 경제가 붕괴 직전에 내몰렸다.

트럼프 대통령도 젊은 층이 선호하는 가상화폐 지원에 나섰다. 미 상원은 스테이블코인 법안을 통과시켜 디지털 달러를 제도권으로 흡수했다. 가격 변동을 최소화하도록 설계된 스테이블코인은 새로운 경제 수단으로서 성장 잠재력이 매우 크다. 그럴수록 규제 완화의 결과가 일깨우는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성재 미국 퍼먼대 경영학 교수·『페드시그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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