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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영의 시선] 타코, 트럼프의 협상 기술 이해하기

중앙일보

2025.07.09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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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영 경제선임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강력한 조처를 발표했다가 한발 물러서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상황을 일컫는 신조어가 있다. ‘트럼프는 항상 겁먹고 물러선다(Trump Always Chickens Out)’의 앞글자를 딴 ‘타코(TACO)’다. 지난 5월 파이낸셜타임스(FT) 기자 로버트 암스트롱이 칼럼에서 처음 썼다. 그는 트럼프 무역정책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관찰했다. 트럼프가 공격적으로 높은 관세율을 발표하면 시장이 부정적으로 반응해 증시가 급락했다. 얼마 뒤 관세 부과 시점을 늦추거나 협상 가능성을 시사하면 시장은 반등했다. 암스트롱은 트럼프 행정부가 시장 압박과 경제 파급을 버틸만한 인내심이 많지 않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에 따라 시장이 출렁이는 ‘타코 랠리’ 이론을 제시했다.

‘항상 물러선다’는 비판 뜻 있지만
시장 반응 중시한 결과로 볼 수도
트럼프 눈높이 맞춤 전략 세워야

가장 뚜렷한 사례는 트럼프가 4월 2일 ‘해방의 날’ 관세라고 명명한, 세계 거의 모든 나라를 대상으로 한 상호관세 발표였다. 다우지수는 하루 새 5% 넘게 빠졌고, 4거래일 만에 12.4% 급락했다. 결국 트럼프는 관세 부과 90일 유예를 선언했고 시장은 즉각 반등했다. 90일 유예 만료(7월 9일)를 앞두고 관세 부과는 다시 8월 1일로 연기됐다.

당초 타코 이론은 트럼프의 관세 발표에 주가가 떨어지면 사고, 유예 발표에 파는 거래 현상을 설명하는 용어로 월가 투자자들 사이에 회자했다. 그러다가 대중적으로 알려지면서 트럼프에게 겁쟁이 또는 예측 불능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꽁무니를 뺀다(chicken out)는 표현이 강렬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트럼프의 태도는 상황인식에 대한 민감성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시장 반응에 귀 기울이고 수위가 지나칠 듯하면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은 되려 마음 내키는 대로 정책을 펴는 게 아니라는 방증이다. 트럼프는 오랜 기간 미국으로부터 이익을 얻은 국가들에 고율 관세를 부과해 경제적으로 보상받고 해외로 나간 제조업도 돌아오길 원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인플레이션, 일자리 감소, 주가 하락 등 부작용이 불가피하다. 타코는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한 나름의 방편으로 작용한다. 고율 관세 공약을 지키면서도 경기 하강을 막고, 사업자들이 대비할 수 있는 시간도 벌 수 있으니 관세 유예는 전략이 될 수 있다. 거듭된 유예가 한참 뒤인 크리스마스 특수에 대한 관세 부담을 상당히 누그러뜨릴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타코는 상대국 압박 효과도 있다. 새로운 기한 설정은 무역 합의에 대한 압력으로 작용한다. 규칙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트럼프 한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장치다. 미국에 최대한의 레버리지를 부여한다. 높은 관세를 위협한 뒤 연기를 발표하는 것은 미국에 유리한 협상이 되도록 하는 협상 전술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한편으로는 트럼프의 소통 방식을 엿볼 수 있다. 8월 1일로 관세를 연기하는 발표를 앞두고 각국과 협상 중인 상무부·무역대표부(USTR) 등 관련 부처에서 협상 시간이 부족하다는 보고를 백악관에 올렸다고 한다. 이를 받아들인 건 트럼프가 참모와 내각 의견을 경청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독불장군 이미지와 달리, 적어도 편향된 주장을 펼치는 유튜브나 소셜미디어만 보고 국정을 이끄는 건 아니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타코가 반복되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트럼프는 지난 4월 관세 부과를 90일 유예하면서 “90일 안에 90건의 딜”이라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웠다. 고율 관세를 두드려 맞게 생긴 교역국들이 미국과 협상을 간절히 원해 줄을 서면 속전속결로 협상해 미국에 유리한 거래를 할 수 있을 것이란 취지였다. 현실은 달랐다. 현재까지 백악관이 “딜이 성사됐다”고 밝힌 나라는 영국과 베트남 정도다. 그나마도 전통적인 의미의 무역 합의로 볼 수 있는 딜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 시각이다.

지난 5월 가장 먼저 발표한 영국과 무역 합의는 영국산 자동차 관세를 27.5%에서 10%로 내리고, 미국 쇠고기에 대한 영국 시장 개방 확대 등을 담았다. 하지만 양국 공식 발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앞으로 협상을 통해 합의해야 할 사항이 더 많다. 이달 초에는 베트남과 두 번째 합의를 발표했다. 백악관은 베트남산 상품 관세를 46%에서 20%로 내리는 잠정 무역합의에 도달했다고 밝혔지만, 문서화된 세부 사항은 공개되지 않았다. 발표할만한 수준에 이르는 딜의 모습은 그때그때 다른 듯하다. 20여일 남은 우리의 협상 시한 안에 트럼프 눈높이를 ‘통과’할만한 딜은 실질보다는 전략에 무게를 둬야 할 수 있다.





박현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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