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현존하는 유일한 원시 함정어업인 ‘남해 지족해협 죽방렴’이 세계중요농업유산(Globally Important Agricultural Heritage System)에 최종 등재됐다고 9일 해양수산부가 밝혔다. 남해 죽방렴이 있는 경남 남해군은 “우리 어업 문화의 우수성과 전통이 세계적으로 공인 받았다”고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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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죽방렴’ 韓 8번째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
이날 해양수산부·남해군에 따르면 지난 7~8일 열린 세계식량농업기구(FAO) 세계중요농업유산 국제회의에서 남해 죽방렴을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하기로 최종 결정됐다. 국내에선 8번째다. 앞서 2014년부터 제주 밭담, 청산도 구들장 논, 하동 전통차(茶) 농업, 금산 전통인삼 농업, 담양 대나무밭, 제주 해녀, 하동·광양 섬진강 재첩잡이 등 7개 농·어업이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됐다.
FAO는 전통적 농어업시스템 보전을 목적으로 2002년부터 세계중요농업유산 제도를 운영해왔다. 지역공동체의 식량·생계 유지에 기여하고, 자연 자원에 대한 독창적인 적응 기술 등 5개 기준으로 선정한다.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 28개국 89개 농어업이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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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물목·빠른 물살’ 물고기 기다리는 ‘함정어업’
남해군 등에 따르면 남해 죽방렴은 물살이 빠른 좁은 물목에 ‘대나무 어사리(또는 대나무 어살)’라고 불리는 함정 어구를 설치해 멸치 등 물고기를 잡는 전통 어업이다. 길이 10m 안팎의 참나무 말뚝 수백 개를 ‘V’자형으로 박고, 말뚝들 사이에 대나무를 발처럼 촘촘하게 엮어 울타리를 만든 뒤, 밀물 때 바닷물과 함께 밀려온 멸치가 썰물 때 울타리에 밀려와 원형 통발이 갇히는 방식이다.
이런 죽방렴은 남해 지족해협의 자연환경에 맞춰 발달했다. 지족해협은 폭이 375m~2700m로 좁고, 조수간만의 차이는 최대 3.6m로 크다. 이처럼 좁은 물목에서 시속 13~15㎞의 빠른 유속으로 조류가 흐르는 탓에, 헤엄칠 힘을 상실한 물고기가 어구에 밀려 들어오는 것이다. 남해군 지족해협에는 죽방렴이 23개가 설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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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멸치’ 잡는 500년 역사의 ‘원시어업’
죽방렴으로 잡은 ‘남해 죽방멸치’는 지역 대표 특산물로, 멸치 중 최상품으로 꼽힌다. 어선에서 그물로 잡은 멸치는 대부분 어획 과정에서 비늘이 벗겨지거나 어획 직후 숨이 끊어져 맛과 상품성이 떨어지지만, 죽방멸치는 죽방렴 안에 들어온 멸치를 살아 있는 상태에서 뜰채로 건지기 때문에 비늘 등 훼손이 없어 좋은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 죽방렴은 지역 주민의 중요한 생계 기반이자 ‘멸치쌈밥’, ‘멸치쌈장’, ‘멸치회무침’, ‘멸치젓갈’, ‘멸간장’ 등 식생활에도 큰 비중을 차지해왔다.
죽방렴의 역사는 500년이 넘는다. 조선 예종 원년(1469년)에 편찬된 『경상도 속찬지리지』에는 “방전(防箭)에서 석수어(조기), 홍어, 문어가 산출된다”라고 기록돼 있는데, 여기 나오는 ‘방전’이 죽방렴과 가장 근접한 용어로 추정된다. 1752년 영조 때 제정된 『균역사목』을 보면, 경상도 어업을 설명하는 내용 중 “대(竹)를 엮어 발을 만들고 말목을 세워 지주로 삼아 어로(魚路)를 횡단하는 것을 방렴이라고 한다”라는 대목에서 나오는 ‘방렴(防簾)’이 죽방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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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업 시연에 문화해설도…“지역 자발적 참여 역할컸다”
남해 죽방렴 어업은 이처럼 독특한 바다 환경과 역사적 배경, 문화 활동 등과 연계되어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해양수산부 이런 가치를 인정해 죽방렴 어업을 2015년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했다. 이어 2023년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 신청서를 제출, 이번에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특히 이번 등재에는 지역 공동체의 자발적인 참여와 전통 계승 의지가 핵심 동력으로 작용했다. 지난 5월 세계중요농업유산 관련 전문가 현장 실사 당시, 어업인들이 전통 어법을 시연하고 문화 해설에도 적극 나서면서 등재 기반을 다졌다. 남해군은 죽방렴 어업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관광과 연계한 다양한 후속 사업을 준비 중이다. 장충남 군수는 “등재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주신 죽방렴보존회 회원들과 어업인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