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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상 초대 수상자 "민주주의 후퇴, 원인은 포퓰리스트 지도자"

중앙일보

2025.07.09 13:00 2025.07.09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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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정치학회(IPSA)가 주최하고 중앙일보가 후원하는 제28회 IPSA 서울총회가 7월 12일부터 닷새간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된다. IPSA 총회가 서울에서 열리는 건 1997년 이후 28년 만이다.

세계 정치학계의 권위자들이 총출동하는 이번 총회의 백미는 14일로 예정된 ‘김대중상’(The Kim Dae-jung Award) 시상식이다. IPSA는 이번 총회를 앞두고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산을 기리기 위해 김대중상을 제정하고, 매 총회 때마다 세계평화·민주주의·인권 분야에서 학문적으로 탁월한 공로를 세운 학자를 선정해 시상하기로 했다.

김대중상 초대 수상자로는 캐나다 몬트리올 맥길(McGill)대학교의 T. V. 폴(Paul) 석좌교수가 선정됐다. 인도 출신인 폴 교수는 세계국제정치학회(ISA) 회장을 역임한 국제정치학계 거두다. 남아시아 및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와 핵 질서, 지위(status) 경쟁 등에 대한 연구에 주력해 왔다. 그는 9일 중앙일보와 서면 인터뷰에서 “오늘날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다”면서도 “최근 한국의 정권교체는 전 세계 민주주의에 희망을 주는 획기적 사건이었다”고 평가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세계정치학회(IPSA)가 IPSA 서울총회(7월 12~16일) 기간 수여하는 '김대중상(The Kim Dae-Jung Award)' 초대 수상자에 T. V. 폴(사진·69) 캐나다 맥길대학교 정치학과 교수가 선정됐다. 사진 T. V. 폴 교수

Q : 초대 수상자로서 김대중상은 어떤 의미인가.
A : “영광스럽다. 김 전 대통령은 한국의 위대한 정치인이자 세계 시민이었다.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입증된 그의 업적은 한 국가·지역을 넘어서는 울림을 갖고 있다. 군부독재에 맞선 그의 투쟁과 민주화 과정의 리더십은 오늘날 전 세계 곳곳에서 포퓰리스트(인기영합적) 지도자에게 억눌린 진보 세력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있다. 햇볕정책을 통해 남북 대화와 화해를 이끌었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촉진해 평화의 진전도 이뤄냈다. 국내·외에서 평화적 변화(peaceful change)를 추구한 김 전 대통령에 대해 학문적으로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Q :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탄핵, 조기 대선을 통한 정권교체 등을 어떻게 봤나.
A :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한국 국민들의 영웅적 투쟁은 전 세계 민주 진영에 큰 희망을 주는 획기적인(pathbreaking) 사건이었다. 이런 시민운동은 앞으로도 독재를 꿈꾸는 자들이 권위주의로 나아가려는 시도를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Q : 동서양을 막론하고 나타나는 정치적 양극화 현상이 민주주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줄까.
A : “오늘날 민주주의의 후퇴(democratic backsliding)는 명백한 현실이다. 민주주의도 순환의 과정을 겪는데, 현재는 하강 국면이다. 원인은 세계화가 초래한 경제적 불평등과 계층간 갈등을 해결하겠다며 등장한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이다. 포퓰리즘은 초기에 전술적으로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데엔 실패할 것이다. 이미 자유를 경험해 본 중산층과 개혁적인 리더가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그 가능성이 더 커진다.”

폴 교수는 약소국(또는 비국가 행위자)과 강대국 사이 ‘비대칭 분쟁’(asymmetric conflict), ‘소프트 밸런싱’(soft balancing), ‘복합 억지’(complex deterrence), ‘평화적 변화’(peaceful change) 등의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대표 저서로는 1945년 이후 핵무기가 실전에서 사용되지 않은 이유를 연구한 『핵무기 비(非)사용의 전통(The Tradition of Non-use of Nuclear Weapons)』이 있다.


Q : 최근 중동 사태에 대한 진단은.
A : “이란이 대리 세력(proxies)을 활용한 비대칭 테러 전략에 의존하는 점에 대해선 비판의 여지가 크지만, 미국·이스라엘도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미국이 주도하거나 지지한 이라크·리비아·시리아에 대한 개입은 결국 미국이 통제할 수 없는 세력을 탄생시켰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초래된 가자지구의 끔찍한 상황은 네타냐후 정권에겐 승리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이스라엘에 더 큰 도전과 위협을 안겨줄 것이다. ‘힘을 통한 평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란은 억지력 확보를 위해 핵무기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고, 미국·이스라엘은 이란에 대한 공격을 계속할 것이다.”


Q : 중동 사태는 북핵 위협이 상존하는 한국과 주변국에 무엇을 시사하나.
A : “평화적인 남북통일 없이 북한이 핵을 포기하기란 어렵다. 북한에게 핵무기는 단순한 억지력이 아니라 정권 생존의 핵심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란이 미국·이스라엘의 공격을 저지할 핵 억지력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북한에게 핵무기를 절대 포기해선 안 된다는 확신을 심어줬다. ‘핵 평화’(nuclear peace) 유지가 목표여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스스로 자제하는 가운데 북한도 핵무기 비사용 규범에 익숙해져야 한다. 한국의 억지력 강화도 중요하지만, 정치적인 화해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선 중국의 중재자적 역할이 중요하다.”

폴 교수는 최근 한국에서 심화하고 있는 정치학 등 인문학 경시 풍조에 관해 “정치학은 국내·외 정치 과정과 국가간 전쟁과 평화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학문으로, 시민의식 형성과 자유주의적 가치 확산에도 필수적”이라며 “오늘날 많은 국가에서 나타나는 민주주의의 후퇴는 기술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학에서 얻을 수 있는 분석력과 지적 역량은 정보기술(IT) 분야를 포함한 다양한 직업에서 좋은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정치인도 정치학을 배워야만 세계를 편협하게 보지 않게 된다”고 강조했다.

☞T. V. 폴 교수 약력
1956년 인도 남부 케랄라 출생
1977년 인도 케랄라대학교 학사
1984년 인도 자와할랄 네루대학교 국제학 석사
1991년 미국 UCLA 정치학 박사
1991년 캐나다 몬트리올 맥길(McGill)대학교 정치학 교수
2016년 세계국제정치학회(ISA) 회장
2018년 캐나다 왕립학회(Royal Society of Canada) 시니어 펠로우
2019년 평화적 변화를 위한 글로벌 리서치 네트워크(GRENPEC) 창립 이사
☞세계정치학회(IPSA) 총회란
세계정치학회(IPSA·International Political Science Association)는 전 세계 정치학자의 대표적 학술단체로 현재 파블로 오냐테 스페인 발렌시아대 정치학과 교수가 회장을 맡고 있다. 1949년 9월 유네스코(UNESCO) 후원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창립해 현재 캐나다 몬트리올에 본부를 두고 있다. IPSA는 정치학 발전에 공헌하는 것을 목적으로 세계 모든 지역의 정치학자와 정치학 관련 기관의 발전과 학문적 자유를 지원하고 있다. ‘정치학 올림픽’으로 불리는 IPSA 총회는 50년 스위스 취리히를 시작으로 2~3년에 한번씩 세계 주요 도시에서 개최되고 있다. 서울에서 개최되는 건 97년 이후 두 번째다.

이번 총회에선 1000개 이상의 분과토론에서 3000편 이상의 논문이 발표된다. 7월 13일 개회식에선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의 기조연설과 함께 유홍림 서울대 총장 등 세계 각국의 정치학자 출신 대학 총장과 정치학회장이 참여하는 가운데 ‘분열된 사회에 권위주의화에 저항하기 위한 학계의 역할’을 주제로 라운드테이블이 열린다. 14일엔 김대중상(The Kim Dae-Jung Award) 시상식, 15일엔 ‘선거 신뢰의 회복’을 주제로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참여하는 라운드테이블이 개최된다. 폐막일인 16일에는 우원식 국회의장과 여야 국회의원, 오냐테 세계정치학회장과 김범수 한국정치학회장 등이 참석해 ‘한국 민주주의 역할과 미래’를 주제로 토론한다.



하준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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