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아프리카 수단의 수도 하르툼에 늘어선 흙집이 근처 아파트로 귀가하던 9살 소녀의 눈길을 붙잡았다. 주민들은 매년 홍수가 날 때마다 무너진 흙집을 다시 지었다. 기업 주재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건너간 수단에서 3년간 지켜본 주민의 신산한 삶은 어린 마음에 불을 지폈다. 비영리 국제단체에서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이 싹튼 순간이었다. 37년이 흐른 지난해 4월, 소녀는 유엔(UN) 기구에서 두 번째 높은 직급에 올랐다.
주인공은 이성아(47) 유엔 국제이주기구(IOM) 운영개혁 사무차장. 175개 회원국을 둔 IOM은 안전하고 질서 있는 이주를 촉진하기 위한 인도적 지원, 재정착, 사회통합 등을 수행하는 스위스 제네바 소재 국제기구다. 외교부가 주관하는 국제기구 진출 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 임명 뒤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이 사무차장과 지난 7일 서울 중구 무교동 IOM 한국대표부 사무실에서 마주 앉았다.
Q :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있는데, 해외에서 공부했나요.
A : 아뇨. 한국에서 중·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했고 첫 직장도 대기업에 속하는 카드 회사였어요. 돈을 모아 대학원에 다니던 중 유엔 산하 국제무역센터(ITC) 인턴에 합격하면서 꿈을 향한 첫발을 뗐어요.
Q : ITC에서 일하는 것은 어땠나요.
A : 무급이라 경제적으로는 힘들었죠. 4프랑(약 7000원)짜리 바게트를 한 개 사서 3조각으로 자른 다음 아침, 점심, 저녁에 나눠 먹었어요. 그래도 꿈꾸던 곳에서 기회가 생겼으니까 즐겁게 다녔죠.
Q : ITC 인턴 이후엔 어떤 일을 주로 해왔나요.
A : 기회가 필요한 사람을 위한 인도적 지원이나 경제 개발 전략을 짜는 경험을 쌓았어요. 가령 독일국제협력공사(GIZ)에서 일할 땐 은행 계좌가 없어서 경제 활동을 못 하는 개발도상국 국민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는 프로젝트를 수행했어요. 80여개 전 세계 중앙은행이 가입하는 등 반향이 커서 빌 게이츠 재단에서 후원도 받았어요. 그 인연으로 빌 게이츠 재단에 잠시 몸담기도 했죠.
Q : 이후 커리어가 잘 풀린 편이네요.
A : 잘 나갈 때였죠. 빌 게이츠 재단은 만나고 싶은 사람은 다 만날 수 있고 예산 제한도 없다시피 한 곳이었거든요. 그런데 37살에 유방암 2기 진단을 받았어요. 암세포가 림프샘까지 전이됐다고 하더라고요.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두 번째 사춘기를 겪었어요. 빌 게이츠 재단도 좋은 곳이지만 더 의미 있는 일에 시간을 쏟자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Q : 국제이주기구는 국내에선 생소한 곳인데요.
A : 전 세계에 재난, 분쟁, 기후위기 등 갖가지 이유로 이주하는 사람이 많아요. 이들에겐 물자도 필요하고 집도 없죠. 다른 유엔 기구와 협력해서 인도적 지원을 하는 걸 우선으로 해요. 또 경제적 기회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정규 과정을 밟아 이주할 수 있게 각 나라 정부와 협력해서 맞춤형 해결법을 제시하는 일도 합니다. 저도 필리핀, 콩고민주공화국 등 이주·분쟁 현장에 방문하고 있어요.
Q : 한국에서도 초저출생 문제로 최근 이민 논의가 급부상했는데요. 이민 국가로서 한국 경쟁력은 어떻습니까.
A : 과거와 달리 한국이 경제·문화적으로 널리 알려져서 이민 수요는 계속 증가할 겁니다. 그런데 고숙련 이민자에게 썩 매력적인 국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언어, 노동권, 포용성 등 이민자로 살기에 불편하게 느낄 점이 있으니까요.
Q : 이민자 유입에 따른 갈등도 만만치 않은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A : 인류 역사에서 이주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억지로 막으면 역효과가 날 수 있죠. 그래서 국제이주기구가 늘 강조하는 게 합법적인 이민 루트를 열어주라는 거예요. 제대로 관리하는 동시에 기회를 주고 사회 통합 정책을 펼쳐야 국가에도 이롭습니다.
Q : 한국에선 과거 이민청 등 이민전담기구 설치 법안이 발의되긴 했지만 뚜렷한 진척은 없는 상황인데요.
A : 이민 관련 종합 전략을 세우는 기관이 필요해요. 이민은 여러 부서가 협업해야 하는 문제다 보니까 통합적으로 전략을 세우고 집행해야 합니다. 이민전담기구 설치가 큰 도움이 될 겁니다.
Q : 한국인 최초로 국제이주기구 사무차장에 임명됐는데 부담감도 클 것 같은데요.
A : 엄청요. 중책이지만 제 자리를 아시아와 연관 지어서 볼 때가 많아요. 제가 열심히 하면 우선은 한국, 나아가 아시아 전체에 길을 터줄 수 있는데 못하면 그 반대가 되는 거니까요. 국제이주기구 사무차장이기도 하지만 유엔 전반적인 사무도 맡고 있거든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큰 이유입니다.